[시론-이선철]김장은 사랑이다

입력 : 2016-11-28 00:00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숙명여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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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농촌 마을은 1년 농사의 마무리와 함께 이런저런 한해의 대소사를 정리하는 시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겨울농사의 시작과 긴 동면의 시간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마을은 분주함과 고요함을 함께 가지는 정중동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빠질 수 없는 중요 행사가 바로 김장을 담그는 일이다. 요즘은 생활이 단출해지고 핵가족화된데다 식생활의 변화로 김장은 차치하고, 김치도 직접 담가 먹는 일보다 사 먹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김장은 대규모 행사이거나 특별한 다른 집 이야기처럼 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이곳 강원도 산골마을은 아직 집집마다 김장을 하는 풍습이 남아 있으며, 주민들은 김장을 계기로 품앗이의 전통을 이어나간다. 지역에서 직접 농사지은 김장배추를 정성껏 절이고, 질 좋은 고춧가루·각종 채소·젓갈 등을 넣어 재료를 만든 후 큰 고무통에 담아 기운차게 버무리며 돌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힘이 솟는다.

 고된 작업을 마치고 푹 삶은 돼지고기 편육에 새우젓, 김장김치를 찢어 올린 흰밥과 된장국 한그릇은 마리아주(mariage·음식궁합)의 절정을 이룬다. 걸쭉한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켜면 고된 작업의 노고가 눈 녹듯 사라지게 된단다. 그래서 김장은 단지 음식을 만드는 일을 넘어 공동체의 생명력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서로 분담해 일을 진행하는 협업의 묘가 필요하기도 하고, 나름 전문성과 경험이 우대받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의 마을에는 해마다 서울의 모 중견 건설회사 임직원들이 김장을 담그러 온다. 회사의 봉사활동인 ‘사랑의 김장드림’ 행사를 위해 오는 것이다. 이미 몇달 전부터 회사 실무자는 필요한 일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회사의 임직원과 마을주민 및 관계자들의 역할을 분담한다. 기업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기획력이 빛을 발한다.

 드디어 이들이 마을에 도착하면 문화공간에 모여 오리엔테이션과 함께 서로 인사를 하고 마치 건설현장에 투입되는 분위기로 채비를 마친 후 마을 어머니들의 지도편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작업에 들어간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달라붙으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오랜만에 마을에 활기가 돈다며 부녀회와 어르신들에게 인기도 만점이다. 그러고 나면 지역 자원봉사센터의 수고로 김치는 바리바리 준비한 생필품과 함께 마을에 홀로 사는 어르신이나 소외주민 또는 마을회관·교회 등에 촘촘히 전달된다.

 전달식까지 끝나면 화답의 의미로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우쿨렐레 합주단이 평소 갈고닦은 연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홀가분하게 주민들과 회사 임직원들이 둘러앉아 부녀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잔칫상을 즐긴다.

 이 행사를 위해 기업에서는 마을에서 농사지은 배추와 양념재료를 다량으로 구매해주고, 기부금과 함께 필요한 물품을 기증한다. 또 식사 준비와 마을 특산물로 기념품을 마련하니 동네 경제에 도움을 줄 뿐 마을에는 일절 부담이 없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봉사활동을 넘어 농촌과 기업이 함께 만드는 사회공헌활동의 모범 답안이며, 호혜적인 1사1촌의 전형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김장은 봉사이자 교류이며, 축제이고 문화다. 그리고 행사의 제목처럼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랑이기도 하다.

 이선철(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숙명여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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