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상생과 연대로 열어갈 ‘21세기 새마을운동’

입력 : 2022-01-01 00:00

대한민국, 외형은 이미 선진국 개개인 삶의 만족도는 최하위

자본·자산에 유착된 불평등은 지역간 불균형과 중첩돼 발현

공동체 균형, 저절로 달성 안돼 경쟁서 벗어나 새 균형 찾아야

 

국제사회가 보는 2021년 대한민국의 외형은 이미 선진국이다. 감염병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세계 10위권의 국내총생산(GDP)을 구가하며, 오히려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는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격상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선진국답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 보고서’에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에도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는 높아지지 않는 아이러니 속, 왜 한국인은 객관적인 지표의 성장에도 불행하다고 느끼는가?

최근 전세계로부터 각광을 받은 한국의 영상콘텐츠에 주목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은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수준 높은 해학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어릴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나이 들어서까지도 비교와 경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즐김의 여유와 삶의 만족도를 제고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개개인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꾀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한 경쟁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상생과 연대의 가치는 그 의미를 상실한다. 이런 경쟁과 심화된 불평등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국에서 생산되고,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해낸 광폭 성장의 이면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이로 인한 공동체의 붕괴와 파편화는 한국의 창작자들에게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불평등은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21세기 자본>으로 스타가 된 토마 피케티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자산불평등 문제를 지적한다. 막대한 노력으로 전문직 고소득자가 될지언정 대를 이은 자산가 그룹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자본과 자산에 유착된 불평등은 세대를 이어 상속되고 경직된 사회를 만든다. 이런 불평등은 경제체제의 효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저성장을 유발하고 사회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불평등은 지역간 불균형과 중첩돼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리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지식 집약적 사회에서 대도시 중심으로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수도권 집중 정도는 국가 전체의 성장 잠재력마저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우리 한국사회는 도시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농촌의 젊은층이 교육과 일자리의 기회를 얻고자 도시로 이동하면서 성장해왔다. 지속적인 이촌향도(離村向都) 결과 도시는 주택과 일자리 부족, 환경오염 등 새로운 위기에 직면했다. 농산어촌은 일손이 부족하고 빈집이 방치되며 활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청년층의 수도권 수평이동으로 인한 지방인구의 현저한 감소가 일어나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수도권과 도시는 집중으로 인한 질적 경쟁력 저하로, 비수도권과 농산어촌은 결핍으로 인한 양적 소멸의 길로 향하고 있다.

이처럼 수도권 일극체제가 집적의 한계에 다다르면서 자연스럽게 분산의 욕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도시민의 귀농·귀촌 의향은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코로나19 시대를 사는 과학적 태도와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새로운 생활방식의 등장에서 기인한다. 도시의 압출(Push) 요인과 농산어촌의 흡인(Pull) 요인이 증가한 측면도 있다. 즉 도시에서의 경기침체와 일자리 감소, 높은 생활비용은 도시민을 농산어촌으로 밀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민관이 협력해 농산어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폐교 위기를 민관이 협력해 살려낸 경남 함양 서하초등학교가 대표적 사례다. 지자체와 학부모·향우회, 그리고 공기업(LH)이 협력해 주거와 일자리 등을 마련한 결과 서하초등학교 학급수가 3학급에서 6학급으로 증가했다. 강원 화천군은 ‘아이 기르기 가장 좋은 화천 만들기’로 2018년 관내 고등학교 입학생이 중학생 졸업생을 추월했다. ‘이웃사촌 시범마을’을 통해 2019년부터 2년간 108명의 청년이 정착한 경북 의성군도 좋은 사례다. 도시민에게 1년간 어촌 살아보기 체험 등을 통해 마을주민이 10년 전보다 4배 증가한 경기 화성시 백미리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위기는 기회다. 농산어촌의 인구 감소 역시 새로운 도전과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역 스스로 변화된 여건을 잘 읽어내고 주민 주도의 자율적 활동을 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한다면 그 토대 위에서 ‘삶의 질 높은 살고 싶은 지역’의 모델이 나오기 마련이다.

지난해부터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는 농산어촌과 도시의 문제를 지역 여건에 맞게 해결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농산어촌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농산어촌 공간에서 지역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도시민의 자아실현을 동시에 해결해보자는 취지에서다. 농산어촌 유토피아는 주민 주도의 발전 전략을 바탕으로 주거와 일자리를 확대하고, 생활인프라의 수준을 종합적으로 높이려는 지자체를 대상으로 정부정책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지난해말 11개 지자체를 농산어촌 유토피아 시범사업으로 선정했고, 올해는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지역발전투자협약을 체결해 동 시범사업이 조기에 성과를 내도록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농산어촌 유토피아 시범사업의 성과는 우리 지역 주민들의 삶에 획기적 전환을 마련할 수 있는 롤모델이 될 것이며 전국적으로 확산될 것이다. 새롭고 혁신적인 ‘21세기 새마을운동’이 펼쳐질 전망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불평등을 정치시스템 실패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봤다. 이는 불평등은 결코 저절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균형은 저절로 달성되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선진국이라고 칭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성장 위주의 편향적 발전 전략으로는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의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는 경쟁이 아닌 상생과 연대의 새로운 균형을 찾아야만 한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에는 더불어 잘사는, 골고루 발전하는 대한민국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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