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청년과 농업, 너무 먼 곳에

입력 : 2020-01-03 00:00 수정 : 2020-01-04 23:50

청년들, 농업에 관심 갖게 하려면 초·중학교서 농업교육 시키고

농고 출신 청년의 농촌 정착 위한 획기적 지원방안도 마련해야
 


7살, 9살배기 두아이를 키우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는 가끔 딸기밭이나 배추밭에 가는 것 같다. 몇주 전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담근 김장도 한통 가지고 왔다. 큰애는 초등학교에 간 다음부턴 농업 관련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몇년 전 도시농업이 유행하던 때 만들어진 구청 텃밭에서 호박과 토마토를 심는데 주로 할머니들이 많다. 그곳에서 젊은 사람이나 어린이들을 보기란 쉽지 않다. 동네 텃밭도 한국의 농업만큼이나 고령화 현상이 심해 보인다.

최근 우리나라 10대에 대한 분석을 해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아동·청소년의 33.8%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보통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된다. 그즈음 특수목적고와 일반 고등학교의 분리가 본격화된다. 엄마나 선생님이 자신을 특목고에 갈 만한 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이생망’의 인식이 생긴다. 게임중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젠더 혐오도 생겨난다. 이러한 한국의 중학생들은 농업과 너무 먼 곳에 있다. 가끔 ‘중학생, 특히 남학생들에게 농사를 경험하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많은 청년은 보통 편의점에 바탕을 둔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만큼 식재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어려운 여건이다.

필자는 주로 생태경제학과 문화경제학을 다룬다. 두분야는 기본적으로는 보존에 관한 학문이며, 경제적 가치평가가 핵심이다. 생태계 보전과 문화재 보존의 경제적 메커니즘은 같다. 외부성이라는 특수효과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에 따라 흘러가게 두면 생태계는 ‘공유지의 비극’에 부딪히게 되고, 문화재는 다 도굴되거나 난개발되기 십상이다. 10년 전 농업은 이와는 조금 다른 분야였지만, 지금은 생태경제학·문화경제학과 많이 다르지 않다. 농업을 그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게 두면 근교농업 정도만 남고 지금의 고령화된 농민들과 함께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한국 농업은 산업 자체의 위상보다는 보호하고 지켜야 할 보존의 위상이 더 필요한 듯하다.

한 농정연구소의 정책보고서를 읽어봤다. 한국 농업이 위기라고 말하는 자료와 분석은 차고 넘친다. 축산업 일부를 제외하면 위기를 맞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진짜 위기는 농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농업을 보는 시선, 그리고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농업에 대한 무관심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한국 농업은 당위성과 애정 두가지 모두 얻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농협에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농업에 너무 많은 보조금이 투입된다며 얄미운 시선을 보내는 것 같다. 편의점 음식과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년들에게 과연 한국 농업은 무엇이겠는가? 농업 관련 기관의 사람들은 잘사는 반면 많은 농민이 가난에 처한 현실이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이나 생태적 기능 등 복잡한 말을 단순하게 하면 농업 자체로는 돈이 되지 않고 경쟁력이 없으니 좀 도와주자는 말이다. 스위스 농업 지원의 경우 잘사는 북부의 독일어권이나 서부의 불어권이 못 사는 농업지역인 남부 이탈리아권을 도와주자는 사회적 합의 배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나 환경농업 등 복잡한 이유를 달았지만, 이탈리아권이 연방에서 이탈하면 스위스 연방이 붕괴되니 잘사는 지역이 좀 돕자는 게 핵심 아니겠는가? 농업이 경쟁력이 없는 건 대부분의 유럽 국가도 마찬가지다. 식량자급률·환경농업·청년농업·지역관리 등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농업을 보존하는 것이 선진국 농업의 특징이다. 경쟁력이나 수출을 앞세웠다면 인구 1000만도 안되는 유럽 국가에선 벌써 농업이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김영삼정부 때처럼 애국심에 호소하는 ‘신토불이’ 방식이 21세기의 먹고살기 힘든 청년들에게 통할 리 없다. 왜? 한우는 고사하고 삼겹살도 비싸서 먹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한우농가를 돕자는 말이 먹히겠는가? 슈퍼마켓에서 유기농과일을 구경만 하는 청년들에게 친환경농산물이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말해봤자 귀에 들어오겠는가? 청년을 비롯한 시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농업을 지킬 방법이 없다. 남들 다 하는 얘기는 그만두고 딱 두가지만 제안하고 싶다.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도시농업과 텃밭 가꾸기 등 농업교육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일본에서 농협이 나서서 지역별로 농업교육재단을 만들고, 초등학생들이 텃밭을 가꾸며 급식 만들기에도 참여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본 적이 있다. 생태교육과 농업교육은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텃밭을 가꾸고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에 농업예산이 투입되면 좋을 것 같다. 입시교육이 학교교육의 전부가 아니다. 자연교육의 연장선에서 농사를 접하고 우리가 먹는 농산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좀더 체계적으로 볼 수 있는 교육을 광범위하게 편성하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청년농업을 획기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기존의 농업고등학교가 농업마이스터고 등 특성화고로 전환되고 있다. 이제는 귀농·귀촌 프로그램과 직불제에 쓰이는 예산 상당 부분을 농고 출신 청년들의 농촌정착 지원에 집중 투입하면 좋을 것 같다. 농업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이 희망하면 농사로 군복무를 대체해주고, 그들에게 기간농 신분으로 공무원 수준의 생활안정을 보장해주는 건 어떨까. 이들 중 상당수에게 지역 공무원 채용의 우선권을 줄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굳이 대학에 가서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것보다 농업마이스터고에서 농부의 길을 걷는 것이 청년실업을 피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면 농업의 미래도 밝아지지 않을까. 더불어 직불제 등 다양한 지원을 청년들에게 먼저 집중시키면 좋을 것 같다.

한국 농업은 너무 빨리 늙어가고 있다. 수입 농산물 앞에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농촌에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도로 만들 돈들을 학교와 미래세대를 위해 쓰는 것이 낫다고 본다. 그것이 농촌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 전환점을 만들지 못하면 농업은 정부예산을 산소호흡기처럼 쓰다가 결국 몰락하게 될지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시화율 100%, 이것이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다. 이건 아니다. 농업개혁을 위해선 제도개혁보다 시민들에게 농업의 당위성을 얻는 길, 청년들에게 관심을 받는 길을 찾는 것이 먼저다. 부모들이 중2 자녀에게 “얘, 농업마이스터고는 어떻겠니?”라고 제안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한국 농업도 살아날 길이 생긴다.

‘지금의 1020세대와 농업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 농업교육과 지원을 재설계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년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여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다. 놀이와 생활, 교양 그리고 일자리로서 농업의 역할을 재검토할 시점이다.
 



우석훈은…

▲1968년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파리제10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전 국무총리실 전문위원 ▲전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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