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농민신문’과 나

입력 : 2019-08-15 00:00

40만부 이상의 발행부수 영향력 농업생산의 소중함 생생히 느껴

농업의 공익적 가치·희망 전달 도농간 소통 가교역할 ‘톡톡히’

농가소득 증대 견인차 역할 농업·농촌 발전 공헌 기대



올해로 <농민신문>이 창간 55주년을 맞이했다. 더불어 NBS한국농업방송이 개국한 지 1주년이 됐다. 모두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경사로,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개인적으로 <농민신문> 편집자문위원을 맡은 지도 벌써 3년째에 접어들었다. 사실 처음 편집자문위원을 맡아달라고 부탁받았을 때만 해도 <농민신문>에 대해 자세히 몰랐다. 그런데 40만부가 넘는 발행부수에 전국적으로 영향력 있는 신문이라는 걸 차츰 알게 되면서 경이로움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갖게 됐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은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이다. 나에게도 여러 만남의 귀한 인연들이 힘이 됐지만, 그중 <농민신문>과의 인연은 생의 활력소가 됐다. 농협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친숙한 이미지가 있었다. 서울 중구에 있는 이화여자중학교·이화여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농협이 있었고, 일찍부터 농협이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농촌에 연고가 없는 서울 토박이라 방학 때 친구들이 할아버지·할머니가 계신 고향을 찾아가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 늘 있었다. 다행히도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보니 전국의 유적지를 찾아다닐 기회가 많아 농촌의 싱그러움과 자연의 수려함에 감동과 설레는 마음의 향수가 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유적지와 함께 농촌환경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안목이 열리고, 역사공부를 할 때 익히 보아왔던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도 실감 나게 다가온다.

<농민신문> 편집자문위원을 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전공분야가 다른 자문위원들로부터 세상을 보는 경륜과 지혜를 배웠고, 가끔 진행되는 농촌체험활동을 통해 농업생산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됐다. 소득을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땀 흘리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았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애국심과 미래의 희망을 발견했다.

한편으로는 편집자문위원으로서 <농민신문>의 발전과 NBS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나름대로 도울 수 있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농민신문> 가족의 일원으로서 소명이라 생각하며 <농민신문>에 수차례 기고도 하고 귀농귀촌박람회 등 각종 행사에 유명인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듯 홍보대사처럼 자발적으로 나서서 각계를 설득하고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었던 일은 기쁨과 보람이었다.

농업은 생명의 근원이고 삶의 원천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얻는 보람과 하늘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인내와 끈기로 이뤄내는 상생의 정신과 서로 품앗이하는 공동체정신은 농업에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이다. 이기심으로 메말라가는 오늘날의 각박한 현실에서 농업은 산소 같은 힘을 지속적으로 발휘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생명을 죽이고 획득하는 유목생활이 아니라 생명을 가꾸고 수확하는 생명존중의 사상이 항상 농업사회 속에 내재돼 있다. 바로 인류의 미래지향적 가치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한 일화가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콩밭에 콩을 심는데, 할아버지는 한구멍에 세알씩 넣고 손자는 한알씩 넣었다. 그래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왜 빨리빨리 한알씩 넣지 복잡하게 세알씩 넣느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한알은 공중에 나는 새가 먹고, 한알은 땅에 기어 다니는 벌레가 먹고, 한알은 너와 나 같은 사람이 먹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바로 우리 정신세계 속에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 우주만물과 생명의 소중함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농촌생활 속에서 터득할 수 있는 불변의 진리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할 수 없는 질서와 순리,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 배우는 대화합의 진리는 인성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생산의 기본 토양을 바꿀 수는 없다. 기술은 로봇이 대신해줄지 몰라도 우리가 디디고 있는 땅은 부정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는 것이다. 땅은 생명을 싹틔우고,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 하고,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두는 날이 있기에 우리에게 인내와 끈기를 가르친다. 특히 따뜻한 인간애,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AI도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다움이다.

<농민신문>을 보면 우선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 여타 신문이 다루는 험악한 사건들이나 사회적 갈등보다는 농업현장에서 아이디어로 생산력을 높인 사례, 실패를 이겨낸 사례, 협력을 이뤄낸 사례를 다룸으로써 선한 사회운동을 릴레이하는 장이 되고 있다. 또 하나는 이상과 현실을 냉철히 분석해 전달한다는 점이다. 최근 풍년 속에서도 양파값 하락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풍년이 두렵다’는 <농민신문>의 제목은 안타까움과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농민신문>은 도농간 소통의 장으로서 가교역할도 하고 있다. 농민들이 고생해서 생산한 농산물을 도시민들이 적극 소비해야 농촌도 살고 국가도 산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아울러 농민들도 국민을 위해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정성을 모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바로 <농민신문>만이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역할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최고의 리더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의 리더십에서 역사의 지혜를 구해보는 것도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혜안을 갖출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세종대왕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 하여, 나라의 근본인 백성이 배고픔에 시달리고 억울함에 괴로워한다면 그 나라의 왕이나 수령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농가소득을 올려서 백성을 배불리 먹여 살리고 근심과 걱정을 덜어줄지 노심초사한 세종대왕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세종은 애민의식과 민족정신의 일환으로 농업부문의 혁신을 추진했다.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농업의 자주화를 꾀했고 농업환경을 편리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농업의 과학화를 이뤄냈다. 그리고 농민들의 의욕을 진작시키고자 세제개편의 합리화를 도모해 국가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했다. 세종의 이러한 조치들은 오늘날에도 귀담아들을 만한 내용이다.

신문은 종합적인 정보의 집산지로서 정보공유와 소통의 장이다. 또 역사의 기록물로서 먼 훗날 그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초자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정확하고 신속한 사실의 전달은 물론 시대의 담론을 담아내고 예리한 분석과 앞을 내다보는 나침반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앞으로 농촌을 지키는 미래인재들을 양성하는 데도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농민신문>이 그동안의 비약적인 발전을 토대로 농민과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 ‘농가소득 5000만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농민의 권익신장과 농업발전을 선도하고 새로운 농촌문화 창달에 더 크게 공헌할 것을 기대하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배용 (영산대 석좌교수(전 이화여대 총장)·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본지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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