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2017년, 우리 동네에 생긴 일

입력 : 2017-12-29 00:00 수정 : 2018-03-02 15:16

고향 마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보니…

벼농사 대신 지어주는 젊은 ‘기계농사꾼’들 생겨

오랜 세월 농사짓던 사촌형님 인건비 안 나와 논농사 포기 선언

아제는 고추 대신 배추 심었는데 놀랍게도 고추값 치솟아 열 받고…

이웃한 두개 면 쥐띠들 모임에선 “닭에 사료 대신 벼 주겠다” 말 나와

농사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농부들 얼굴엔 복잡한 표정이…
 


내가 사는 마을엔 지금 15가구가 산다. 나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이 마을에서 자라, 이 마을에서 오랫동안 선생을 하다가 퇴직을 하고, 전주에서 몇년 살다가 다시 이 마을에 집을 지어 정착했다. 정착이라기보다는 살던 곳으로 돌아와 안착한 셈이다.

몇년 만에 다시 돌아와보니, 논농사 일이 많이 변해 있었다. 논을 갈고, 못자리를 하고, 모내기를 하고, 농약을 치고, 논을 매고, 벼를 베고, 타작을 하고, 공판을 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젊은 ‘기계농사꾼’들이 생긴 것이다. 말하자면 벼농사를 지어주는 업자(?)들이 생겨난 셈이다. 논을 가는 데 한마지기에 얼마, 못자리 한판에 얼마, 벼를 심어주는 데 얼마, 벼를 베어주는 데 얼마 이런 식이어서 막상 논 주인은 크게 할 일이 없어졌다. 내가 사는 곳 주위 대여섯 마을에는 이렇게 벼농사를 대신해주는 농부가 서너명 된다.

이웃에 사는 사촌형님은 해방둥이 일흔셋이다. 오랜 세월 농사를 짓고 사셨다. 그런데 올봄 드디어 형님이 벼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해마다 농사를 짓고 나서 내년부터는 절대 논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하신 지가 10년도 더 넘었다. 그래도 벼농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이제 나이도 나이고 “농사를 지어봐야 열만 받는다”며 논을 버린 것이다.

손수 벼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하고 아침마다 산책 삼아 논에 가서 너구리·멧돼지가 올챙이나 지렁이를 잡아먹으려고 쓰러뜨려놓은 벼를 일으켜 세우고, 짐승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쳐놓은 울타리를 손보기도 했다. 그런데 농사를 지어놓고 아무리 이리저리 계산하고 이것저것 따져봐도 절대 인건비가 나오지 않으니, “농사를 짓지 않는 게 이익”이라며 “내가 이제 다시 벼농사를 짓는가 봐라” 하고 두손을 탈탈 털어버린 것이다.

농사지어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막상 형님이 그 좋은 논을 버리고 나니, 형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무엇인가 삶의 한쪽을 내다버린 것 같아 지금까지 논 있는 쪽을 바라보기가 싫다. 평생 강물을 건너며 발이 닳게 오가던 그 정다운 길들을 이제 오갈 일이 없어져서다.

우리 동네에선 그렇게 논들이 해마다 사라지고 있다. 산골마을 논을 버리는 일이 흔한 일이 됐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논을 버릴 때까지 나라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논을 버리고 나서 잠 못 들고 뒤척였을 그들의 오랜 슬픔과 억울함을 그 누가 위로나 해줬는지…. 그 논에 이장이 봄배추를 갈았는데, 웬걸 배추값이 형편없어서 수확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갈아엎고 말았다.

우리 집 앞에는 논이 없고 모두 밭이다. 옛날에는 논농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밭으로 만들어 밭농사를 짓는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큰집 형님이 몇평 안되는 논을 밭으로 만들어 가지가지 채소들을 가꾸신다. 그 밭 바로 앞에선 이장이 농사를 짓는다. 깨·고추·무·배추 같은 채소를 주로 가꾼다. 그 바로 앞에서 아제가 오랫동안 고추농사를 지었다.

아제도 올해 그 밭에 고추를 심지 않았다. 올해부터 고추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두 내외분 인건비가 절대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올해는 마늘을 심고 깨농사를 짓고 가을에는 배추를 갈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근(600g)에 지난해 7000~8000원 하던 고추가 올해 1만7000원까지 값이 치솟고 말았다. 이 무슨 열 받는 일인가.

내가 사는 곳은 전북 임실군 덕치면이다. 이웃면은 강진면이다. 전남 강진이 아니다. 덕치면과 강진면 쥐띠들의 갑계모임이 있다. 오래전 두 면(面) 쥐띠들이 다 모였더니 전체가 아홉이다. 이따금 부부끼리 모여 밥을 먹는다. 차들이 있어서 제법 멀리까지 간다. 올해는 밥을 먹으러 담양 쪽으로 두어번 간 것 같다.

한가한 어느 날, 그날도 쥐띠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었다. 맛있게 오리주물럭을 먹던 복근이가 “나 오늘부터 사료 대신 벼를 주기로 했당께” 하는 것이 아닌가. 복근이가 닭을 한 30여마리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복근이네 집에서 달걀을 사다먹고 있었다. 사료 대신 닭에게 벼를 주기로 했다는 말에 우리들은 일제히 복근이를 바라봤다. 사료 대신 쌀이라니, 쌀이 버려지다니…(그런데 복근이는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그 닭도 키우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날 닭 사료 대신 벼를 주겠다는 말을 듣고 복근이를 바라보던 일흔살 농부 쥐띠들의 얼굴을 나는 잊지 못한다. 진즉부터 농사가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쌀과 사료 이야기를 듣는 농사꾼들의 얼굴은 말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겨울이다. 이제 마을은 모든 소란을 감춘 채 깊은 고요 속에 잠겨 있다. 사람들도 산도 강도 나무도 논과 밭도 산짐승들도 겨울을 맞이해 겨울의 정적 속에 묻혀 있다. 인적 드문 마을은 쓸쓸하고 적막하다. 큰집 형님네 집 난로 연통의 연기가 지붕 위로 풀풀 날린다. 그 연기가 지금 유일하게 마을에 사람이 산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김용택은… ‘섬진강 시인’으로 유명하다. <섬진강> <맑은 날> <누이야 날이 저문다> <꽃산 가는 길> <그리운 꽃편지> <그대 거침없는 사랑> <강 같은 세월> 등 다수의 시집 출간. ▲김수영문학상(1986년) ▲소월시문학상(1997년) ▲윤동주문학대상(2012년) 수상. 2016년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로 귀향해 농사짓고 시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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