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겨울 밑둥치에서 기지개 켜는 매화

입력 : 2020-02-28 00:00 수정 : 2020-06-30 18:34

북산 김수철 ‘설루상매’ 개성적 붓질 돋보여

엷게 우린 먹물 바탕에 보송한 얼음송이처럼 눈꽃 매달리듯 돋아난 백매

누옥 속 사내 그 향기에 취해
 

김수철의 ‘설루상매(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119×35.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 수상한 겨울마저 너끈히 넘기는 벗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세한삼우(歲寒三友)’ 곧 소나무·대나무·매화라 한다. 겨울 그림 속의 단골도 그들이다. 여기에 하얀 눈을 곁들이면 어찌 될까. 눈은 덤이 아니라 제 몫을 차지한다. 눈은 결기에 찬 벗들을 안받침해준다. 세 벗과 얼마나 죽이 잘 맞는지, 눈이 소나무에 내리면 ‘설송’이요, 대나무에 쌓이면 ‘설죽’, 매화에 비끼면 ‘설중매’가 된다.

여기, 겨울 맛이 풍기는 그림을 보자. 먼산 바위가 혹처럼 솟았다. 이끼 같은 점들은 아득한 풀과 나무들이리라. 그 아래 테두리만 남은 산은 온통 눈이다. 강이 흐르고 다리가 놓인 한 귀퉁이에 집들이 들어섰는데, 시선을 끄는 곳은 따로 있다. 왼쪽 아래 절벽을 보라. 옴팍한 까치집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똬리 튼 사내 하나가 등장한다. 그가 우두망찰 내다보는 것은 가로세로 어지러이 뻗어나간 나뭇가지들이다. 그 가지 끝에 동글동글 맺힌 것은 눈송이런가. 아니, 눈이 아니라, 그게 매화란다. 차고 희디흰 색깔이 오롯이 꽃잎이라니. 하여 이름 붙기를 ‘설중매’라 아니했겠는가.

조선 후기, 새로운 감각과 개성적인 화풍을 들고 나타난 화가가 북산(北山) 김수철이다. 김수철은 세상에 발 디딘 행적이 별로 남지 않은 존재다. 어기찬 붓질 하나로 화단을 놀라게 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그린 <설루상매(雪樓賞梅)>는 화면 가득 물기를 머금었다. 눈이 내리다 멎었지만 대기는 여태 흐리다. 엷게 우린 먹물이 종이 바탕에 스며들어 겨울공기의 싸늘함이 스멀스멀 살아난다.

하얘도 너무 하얀 매화는 먼 산 백설과 다툰다. 보송한 얼음송이처럼, 눈꽃이 매달리듯이 돋아난 백매는 피어도 지나치게 피었다. 입담 좋은 옛 문인들이 붙인 매화의 별호가 여럿이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은 얼음 같은 살결에 옥 같은 잇바디를 말한다. 하기야 꽃잎 낱낱이 삼동의 얼음장보다 시리다. ‘암향부동(暗香浮動)’은 어느 결에 와닿는 향기를 이른다. 매향은 코를 대고 맡으면 상스럽다. 바람이 실어오기를 기다려야 점잖다.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기개도 남다르다. ‘굳센 매화는 얼굴을 치켜들지 않는다(傲骨梅不仰面花·오골매불앙면화)’는 시구절이 회자될 정도다.

단칸 누옥에 오도카니 앉은 저 사내는 매화향기에 행여 멀미 나지나 않을까. 매화 그리는 법은 애당초 가탈스럽다. 화가는 이런저런 번다한 양식에 용케 휘둘리지 않았다. 겨울의 밑둥치에서 숨죽이던 봄이 때맞춰 기지개 켠 것을 남보다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다. 화가는 수선스레 팔을 들어 올린 매화의 환호가 그저 반갑고 벅차다. 새 가지에 신열 번지듯 점점이 찍어놓은 매화꽃만 봐도 화가의 독차지가 얼마나 뿌듯했을지 알 만하다.

얼음장 밑에서도 봄은 배냇짓을 한다. 눈뭉치 아래서도 봄기운은 옹알이를 한다. 남보다 앞서 봄맞이하려는 자는 모름지기 눈 밝고 귀 밝을 일이다. 세상은 바이러스로 난리 통인데 한갓되이 그림 속에 핀 매화타령이냐고? 봄은 온다고 겨우 말씀드린다.
 



손철주는…

▲미술평론가 ▲저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사람 보는 눈>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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