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앉아서 입 다물어보면 아는 일들

입력 : 2019-11-22 00:00 수정 : 2020-06-25 19:02

조선 화가 이재관의 ‘송하처사’ 소나무 아래 느긋하게 쉬는 선비

자세히 보면 무릎 안은 채 숨 길게 내쉬며 세상 차갑게 봐

어떤 일에도 참견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는 태도 엿보여
 


조선 후기 화가 이재관이 그린 ‘송하처사(松下處士)’가 오늘 새삼스럽게 보인다. 치솟은 소나무 아래 선비가 느긋하게 쉬는 장면이다. 인물을 잘 그린 화가답게 능숙한 필치가 녹아들었다. 선비가 경치 좋은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주제는 옛 그림에 흔하다. 그리하여도 이 작품은 다른 게 눈에 띈다. 그림 속 선비의 흉중이 오롯이 유유자적은 아니다. 휴식과는 다른 속뜻이 똬리 틀고 있다.

이재관의 ‘송하처사(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139.4×66.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 까닭을 그림에서 찾아보자. 화면 왼쪽에 적힌 글이 실마리가 되겠다. 이재관을 ‘그림 귀신’이라 치켜세운 후배 화가 조희룡이 그림 본 소감을 길게 써놓았다. 줄여서 풀이하면 이렇다. ‘소나무는 야위고, 바위는 굳세고, 사람은 업신여긴다. 이리해야 무릎을 안고 숨을 길게 내쉬며 한세상을 차갑게 보는 뜻이 비로소 드러날 것이다.’

이 말의 속내평은 그림을 곱씹어봐야 끄덕여진다. 우뚝한 몸높이에 가지가 처진 소나무는 겉보기에도 마른 편이다. 살찌고 기름진 나무는 선비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걸터앉은 바위는 검질기며 야무지다. 소나무와 바위는 주인공의 내면을 짐작해볼 소도구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선비의 앉음새다. 오연(傲然)한 기세가 곱다시 풍긴다. 한쪽 다리를 무릎 위에 포갠 채 두손을 얌전히 올려놓았지만, 저 빳빳한 고개에 자존이 배어 있다. 고개는 치켜들어도 눈길은 내리깔았다. ‘업신여긴다’고 한 표현이 딱 맞는다. 뒤편 아이의 공손한 자세에서 선비의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포즈가 오히려 돋보인다.

글에서 말한 ‘한세상을 차갑게 보는 뜻’

은 무언가. 선비의 눈초리와 상관 있는 것이 혹 아닐까. 화면 오른쪽에 글 하나가 더 나온다. 화가 이재관이 제 손으로 한구절 써넣기를 “시답잖은 눈빛으로 세상 사람을 본다(白眼看他世上人·백안간타세상인)”고 했다. 이 말이 귀에 익다. 당나라 왕유의 잘 알려진 시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푸른 나무 짙은 그늘, 사방을 둘렀고 / 햇살 아래 맑은 이끼, 먼지 하나 없네 / 소나무 아래 맨머리로 다리 올린 채 앉아 / 시답잖은 눈빛으로 세상 사람을 본다네.” 바로 이 시경(詩境)이 이재관의 그림에 고스란하게 살아났다.

그림 속의 선비는 세상을 백안시(白眼視)한다. ‘백안시’는 죽림칠현 중 한명인 완적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눈을 희멀겋게 뜨고 깔봤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제목에 나왔다시피 ‘처사’는 세상사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하지 않는 존재다. 다만 넌지시 꾸짖는다. “고요히 앉아있으면 알 것이다. 너희가 얼마나 날뛰고 있는지. 입을 다물어봐야 느낄 것이다. 너희들 말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호젓하게 지내보면 깨달을 것이다. 너희의 교제가 얼마나 번다한지.”

예나 제나 세상은 엉덩이 가볍고 입살 드센 사람들이 활보한다. 들며 나며 바쁘게 설쳐대니 흘리고 다니는 말 또한 꼴사납기 십상이다. 그러고서야 한세상을 어이 차갑게 볼까. 한해가 저물어간다. 가만히 비춰보기에 좋은 날들이다.
 




손철주는…

▲미술평론가 ▲저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사람 보는 눈>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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