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철주의 옛 그림 이야기] 씨알 굵은 놈이 꿈틀거릴 때

입력 : 2019-07-17 00:00 수정 : 2020-06-25 19:03

삿갓 쓴 농부, 소 끌고 ‘터벅터벅’ 웃통 벗은 사내들, 천렵에 열중

알몸으로 나선 이, 큰 놈 잡다가 복스런 볼기짝 엉겁결 드러내

새참 인 아낙은 남편과 대거리 일과 놀이…정이 묻어나는 풍경
 


물과 함께 노는 피서에 들뜬 신명이 있다. 등목이나 물맞이는 제풀에 놀라서 더위가 도망간다. 폭포수가 뒤통수로 떨어지면 노곤한 정신이 화들짝 깨어난다. 탁족(濯足·물에 발을 담가 더위를 피하는 선비들의 피서법)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발바닥에서 타고 오른 냉기가 정수리에 미칠 즈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흥얼거리는 소리가 저절로 새 나온다. 천렵(川獵)은 어떤가. 냇가에서 그물과 통발로 물고기를 잡는 놀이가 천렵이다. 그 자리에서 어죽과 매운탕을 끓여 먹노라면 이열치열의 효험을 맛본다.

유숙의 ‘천렵(19세기, 종이에 수묵채색, 55.5×32.5㎝, 개인 소장)’.

화가 유숙이 그린 ‘천렵’을 보자. 물놀이의 시끌벅적한 흥취가 넘친다. 그림 위에 ‘계심어비(溪深魚肥)’라 적혀 있다. ‘시냇물은 깊고 물고기는 살찌네’라는 뜻으로 좀 뻔한 대구다. 그 옆에 쓴 ‘혜산(蕙山)’은 화가의 호다. 유숙은 철종과 고종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참여한 화원이다. 이름이 낯선 듯해도 미술사는 그를 오원 장승업의 스승으로 짐작한다. 제자보다 덜 알려졌지만 재주는 푸졌다. 진경산수와 화조, 그리고 인물화와 풍속화 등에서 두루 밑지지 않던 기량을 자랑했다.

이 그림 ‘천렵’은 옛 살림의 인정이 묻어 있다. 아스라한 원경부터 바짝 당겨서 보자. 갓 쓰고 말 탄 양반 셋이 키 큰 나무를 지나간다. 그들은 마을사람이 아닌 과객이 분명하다. 바로 아래 길마(안장)를 얹은 소 한마리와 삿갓 쓴 농부도 또렷하다. 뙤약볕 내리쬐어도 논밭일은 미룰 수 없다는 걸음걸이다. 누구는 물장구치며 즐겨도 다른 누구는 갈 길을 가거나 애써 일해야만 세상사가 돌아간다.

이제 물고기 잡는 광경을 둘러볼 차례다. 재미난 자리에 구경꾼이 빠질쏘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등을 보인 채 나란히 서거나 앉은 사람들. 갓쟁이가 셋, 사방관(四方冠·네모반듯한 관)이 하나, 땋은 머리 아이가 하나다. 그들은 불구경이 아니라 물구경에 혼이 나갔다. 저 그물 건져내면 얼추 몇마리나 퍼덕거리며 요동칠까. 침 꼴딱 넘어가는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등허리가 굽어버렸다. 옷 훌훌 벗어던지고 냉큼 물로 뛰어들고픈 마음이 굴뚝같을 게다. 웃통을 내놓은 사내들은 일감을 잘도 나누었다. 손에 나란히 그물을 잡은 이들은 조심조심한다. 행여 한마리라도 새 나갈까 그물자락을 꾹 밟고선 모양새다. 그 위로 한명은 퐁당퐁당 물장구치며 고기를 몰아오고, 한명은 허리에 바구니를 두른 채 바닥을 알뜰히 뒤지며 다가온다. 삿갓 차림과 맨상투 바람에 고개 숙인 두 남정네는 쑤기와 통발에 고기가 얼마나 잡혔는지 궁금해 못 견딘다. 가관은 맨 아래쪽 올 누드의 사내다. 씨알 굵은 놈이 금방 맨손에 걸려든 모양이다. 고샅(사타구니)도 가리지 않은 맨 몸뚱이인데, 엉겁결에 복스러운 볼기짝을 번쩍 들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왼쪽 아래에 더 있다. 머리에 광주리를 인 아내가 새참을 나른다. 배가 볼록한 항아리를 지고 가는 남편이 아내와 대거리한다. 그 모습에 왠지 뭉클해진다. 부부는 김매고 거름 주고 물 대느라 해거름까지 무더위와 씨름할 테다. 바라건대, 고소한 매운탕이 식기 전에 다시 갯가로 돌아오게 되기를. 일과 놀이가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는 이 참살이 광경도 이러구러 사라져간다.
 



손철주는…

▲미술평론가 ▲저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흥, 손철주의 음악이 있는 옛 그림 강의> <사람 보는 눈> <꽃 피는 삶에 홀리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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