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포럼] 공익직불제,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입력 : 2020-03-18 00:00

가격지지와 생산성 중심 농정 탈피

농업·농촌 가치 인식전환 계기돼야
 


지난해말 ‘농업·농촌의 공익 기능 증진 직접지불제 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정부가 내걸었던 직접지불제(이하 직불제) 중심의 농정시대가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개정 법률은 이번에 개편되는 직불제의 목적이 농업·농촌의 공익 기능 증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를 ‘공익직불제’라 부르고 있다.

직불제란 농정목표 달성을 위해 생산농가에 정부 재정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이다. 전통적 가격지지 방식과 달리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생산자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시장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설계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시장중립적 특성 때문에 세계무역기구(WTO)는 직불제를 세계 농업개혁을 위한 정책대안으로 제시했다. 또한 직불제는 예산지원을 조건으로 생산자에게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할 수 있어 특정한 정책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럽 여러 나라가 직불제를 통해 환경보전·동물복지 같은 비경제적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직불제가 이런 공통된 특성을 갖고 있지만 그 시행 목적은 농정방향이나 직불제 유형에 따라 모두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직불제의 소득재분배 효과나 출현 배경을 보면 어느 나라나 농가소득 증대를 기본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개편된 우리나라의 직불제는 어떠한가? 쌀 변동직불제를 폐지하고 품목 구분 없이 고정직불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보면 비로소 시장지향성 요건을 갖춘 진정한 직불제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 준수의무는 강화된 것이 거의 없는데도 공익 기능 증진을 주목적으로 명시한 데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농가소득이 도시의 60% 수준에 머물러 있는 농업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직불제 중심의 농정으로 가는 이유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가격지지 같은 과거의 농정 틀에서 벗어나 시장지향적 농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이런 직불제를 통해 농가소득 안정화와 양극화 해소를 이루고,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농업은 토지·물·공기·햇빛 등 자연요소를 투입해 생명체를 생산하는 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과 자연생태계 보전, 자연경관 유지, 수자원 보존 등의 공익적 기능도 수행하게 돼 있다. 이는 생산과정에서 자연히 생기는 이른바 ‘긍정적 외부효과’로 농업이 갖는 본래적 속성이다. 그동안은 잘못된 영농방식과 인식부족 등으로 이런 기능이 크게 훼손돼왔다. 이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은 새롭게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됐던 영농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다. 직불제는 그 촉진제 역할을 하면 되는 만큼 굳이 공익형이란 수식어가 필요한 건 아니다.

일찍부터 직불제 중심의 농정을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스위스나 독일 같은 서유럽 선진국들도 이를 통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잘 발현시키고 있지만, ‘공익직불제’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하진 않는다. 직불제의 주목적을 공익 기능 증진에만 둘 수 없을 뿐 아니라 이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영농활동을 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0년은 한국 농정사에 큰 획을 긋는 해다. 전통적 가격지지 방식과 생산성 중심의 농정에서 벗어나 미래 지속가능한 농업을 향한 시장지향적 직불제 중심의 농정이 시작되는 원년이기 때문이다. 농업·농촌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출발선을 떠났을 뿐이다. 직불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농업발전을 위해 이를 어떻게 정착시켜나갈지 많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이용기 (영남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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