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포럼] 개헌을 논하는 이유

입력 : 2020-02-19 00:00 수정 : 2020-03-09 09:04

현행 헌법, 개정된 지 30년 넘어 한계

세계화·분권화 등 시대 가치 담아야
 


헌법은 국가가 추구하는 시대정신의 구현이다. 따라서 동시대의 지배적인 이념 또는 정신에 대한 가치판단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 헌법이 자유와 평등, 기본적 인권의 존중, 민주주의, 법치주의, 권력분립,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평화통일의 원칙을 선택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그런 점에서 헌법은 가치중립적이라기보다 가치지향적이다. 헌법은 사회의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 담아선 안된다. 반대로 현실의 변화에 뒤처져 규범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죽은 헌법이 된다. 따라서 헌법은 시대의 가치와 현실을 적절히 반영해 국민의 생활헌장, 민주시민의 생활법치를 위한 장전이 돼야 한다.

전세계는 환경문제, 기후변화, 재난·재해의 대응, 질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 자원의 이용, 온라인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돼 있다. 이런 가운데 올초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 3법’은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불필요한 중복규제를 없애고 4차산업혁명에 맞춰 개인과 기업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폭을 넓히기 위한 법률이다. 추가정보의 결합 없이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안전하게 처리된 가명정보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권력구조적 측면에서 검찰이 가진 권한을 분산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도 제정됐다. 경찰에게 모든 사건에 대한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하고 경찰의 1차 수사 재량권을 대폭 늘리는 한편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직접 수사범위를 제한하는 검경수사권 조정 역시 최근 이뤄졌다. 또한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한 이래 지방은 중앙정부의 획일적인 지시에 의존하던 행정에서 벗어나 주민에게 맞춘 행정과 국제교류 등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지방정부로 성장해왔다.

현행 헌법은 개정된 지 30년이 넘었다. 지금까지 우리 헌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정보화·분권화·지방화 시대를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30여년 전 오직 민주화에 대한 열망만 있었을 뿐 세계화와 지방화에 대한 통찰은 없었던 당시 헌법으로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충분히 포섭할 수 없게 됐다. 헌법 해석에만 의존하기에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우리 헌법에 대통령과 국회를 비롯한 권력기관의 분권화, 정보화 시대에 필요한 기본적 권리의 확장과 규제의 조화, 세계화·국제화 시대에 맞는 외국인의 기본권 영역, 중앙·지방정부의 협력과 역할분담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을 담아야 한다.

정부는 2018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을 이루겠다는 의지 아래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개헌안은 끝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제 곧 20대 국회는 막을 내리고 21대 국회가 탄생한다. 정치권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바뀐 권력구조의 현실을 담기 위해 또는 지방분권을 위해 ‘헌법 개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대략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개헌의 시점이나 내용, 방법론 등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중요한 건 21대 국회에서는 그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각 정당이 총선에 대비한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각 정당의 공약사항에 개헌이 담기길 기대해본다. 그것이 비록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상(床)에는 올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김수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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