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포럼] 누가 농민이고 농업인인가

입력 : 2019-08-23 00:00 수정 : 2019-08-23 23:44

스스로 평생 농업을 ‘업’ 삼아야만 국민이 공감하고 법률로 인정받아
 


올초 대법원은 1만㎡(3025평) 미만 상속농지의 경우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아도 계속 보유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비농민의 농지 소유를 공인한 셈이다. 직불금이 이런 부재지주에게 흘러가는 사례가 종종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농업인이 되면 각종 세제혜택을 비롯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도 받을 수 있어서 ‘농업인 확인서’ 발급신청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필자가 부득불 농민과 농업인을 구분해서 예시한 까닭은 누가 농민이고 농업인인지, 어떻게 농업인이 되는지에 대해 독자의 이해를 넓히고 싶어서다. 우리가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농민’이란 농촌에 살면서 영농하는 사람을 말한다. 1950년대 농지개혁 때 농지분배 대상인 농가와 그 구성원인 농민의 개념이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농민은 농업이 생계수단이므로 부업이나 여가활동으로 영농하는 사람은 농민의 범주에서 제외했다. 또한 당시에는 농지 경작자만 농민에 해당됐는데, 1980년대 들어 복합영농이 장려되고 양축업이 늘면서 축산농가도 농민에 포함돼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농민의 성격도 많이 변천됐으며, 오늘날에도 개념적으로는 일정치 않다. 농촌이 도시화되고 도시농업이 장려되면서 ‘도시농민’이라는 용어도 무리 없이 사용되고 있다. 농민의 개념에 농촌거주라는 요건은 사라졌지만, ‘영농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왔으니 그나마 긍정적이다.

관행적인 농민 개념은 1990년대 들어 ‘농업인’이라는 법률적 정의를 갖추게 됐다. 1994년제정된 농지법은 농지 소유·이용 주체로 농업인을 규정했다. 개인인 농민을 농지 소유자로 규정하는 것이 법 논리에 맞는다는 학계의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그 후 관련 법률에서도 농지법의 농업인 정의가 원용됐으며, 농업인은 법률적·정책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요즘의 농업인은 예전의 농민 범주만이 아니다. 현행 법률에서 농업인은 농지 경작자, 농산물 판매자, 농업 종사자, 농업법인 고용자 등을 포괄한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시행령 제3조에서 농업인은 1000㎡(302.5평) 이상의 농지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농업경영을 통한 농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농업법인의 농산물 출하·유통·가공·판매 활동에 1년 이상 계속해 고용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엄격히 말해서 지난 20년 동안 수차례의 법률 개정을 통해 농업인의 범위만 확대되고 자격기준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경지면적 1000㎡나 농산물 판매액 120만원은 농업경영의 하한기준이라고는 하지만, 농가경제 측면에서는 취미농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농업 종사자나 농업법인 고용자까지 포함함으로써 농업인의 범위가 크게 확장됐다.

농업인의 법률적 정의는 농정의 중요한 지침임에도 그동안 제도를 느슨히 운용함으로써 ‘농민답지 않은 농업인’을 양산한 것은 아닌가. 제도적으로 농업인이 늘어나 농업·농촌이 활력을 얻으면 좋겠지만, 자칫 정책 지원의 취지가 훼손되고 지원효과가 비농업계로 누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다행히 2009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를 도입하고 농업인들에 대한 맞춤형 정책을 펼치고 있어 기대가 크다. 농업이 주업인 농업인에게 경영발전단계에 맞춰 정책자금을 융자해주거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하니, 이 정책을 통해 우리 농업의 미래를 담당할 농업경영인이 많이 육성되기를 바란다.

농업을 평생직업으로 삼아 새로 제도권에 진입하는 후계농과 창업농이야말로 국민이 공감하는 농민이고 법률이 인정하는 농업인이다.

김정호 (환경농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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