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눈] 구제역 백신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입력 : 2020-03-30 00: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바이러스성 질병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축산업계에선 구제역이 고질적인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지난 2010년 전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여전히 구제역 발생지역으로 남아 있다.

구제역과 관련해 올해 주목해야 할 곳은 대만이다. 대만은 그동안 수의·축산 분야에서 우리보다 한수 아래라고 여겨졌는데, 지난해 7월 구제역 백신 미접종 청정국 선언을 했다. 이후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구제역 백신 미접종 청정국 지위를 인정해줄 것을 신청했고, 올해 5월 승인이 날 것으로 수의계는 예상하고 있다. 승인이 나게 된다면 대만은 1997년 구제역 발생 이후 23년 만에 청정국의 지위를 얻게 된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한 이후 구제역 발생을 억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ASF에 구제역까지 발생하게 되면 축산농가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ASF와 달리 구제역은 백신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구제역 백신 정책을 보다 강도 높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백신 정책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구제역 백신 항체형성률을 가지고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항체형성률이 올라가면 방어력도 높아질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니다.

현재 정부가 농가의 백신 접종 적정성 여부를 검사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은 효소결합면역흡착측정법(ELISA·엘라이사)이다. 엘라이사는 검사의 용이성 때문에 사용되지만 중화항체법(VNT)보다 정확하다고 하긴 어렵다. 엘라이사에서 기준이 되는 PI(Percentage Inhibition·반응억제율)값이 절대값이 아니므로 검사하는 키트 종류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따라서 이 PI값을 농장의 방어력으로 결론지어선 안된다.

최근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공개한 2019년 12월 구제역 혈청 예찰 결과 보고를 보면 우리나라 각 축종별 백신 항체형성률은 소 98.5%(한육우 97.9%, 젖소 99.0%), 돼지 78.7%(번식돈 91.8%, 비육돈 77.2%)였다. 일반적으로 60% 이상의 집단면역(Herd Immunity)이 형성되면 병원체는 통제되는 것으로 본다. 이 사실에 미뤄볼 때 최근 인천 강화의 일부 소 사육농장에서 구제역 감염항체(NSP)가 검출됐다고 해서 농가들이 백신 접종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대만은 백신을 사용하면서도 끊임없는 수의진료 방역시스템 개선을 통해 지역별 백신 접종 중단 등 단계별 절차를 수행했다. 우리의 구제역 백신 정책을 대만과 비교해봤을 때 접종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역학 및 방역관리시스템 개선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나 자문해본다. 아울러 정부주도 방역에서 산업과 농장이 함께하는 자율적인 방역으로 전환하고, 실제 현장을 잘 이해하는 수의계 전문가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구제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섭 (한국양돈수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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