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농민장(農民葬) 이야기

입력 : 2009-09-02 00:00

정진석 (사)흙살리기 참여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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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사)흙살리기 참여연대 대표
국가와 사회에 공헌이 큰 인물이 사망했을 때 그의 죽음에 대한 국민적 애도를 표현하는 장례로 국장·국민장·사회장 등이 있다.

우리 농업분야에서도 농민운동의 큰 족적을 남긴 분에 대해 농민장(農民葬)을 치른 경험이 딱 한번 있다. 1988년 8월5일 ‘고 김용기 장로 농민장’이 그것이다.

1960년대 초반 김용기 선생이 경기 광주에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할 당시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소득이 70달러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였다. 선생께서는 나라의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농촌이 살아야 민족이 산다는 슬로건 아래 농민의식 교육에 온 가족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셨다. 근로·봉사·희생정신(가나안 정신)으로 교육받고 농군학교를 수료한 수많은 농촌지도자들이 농촌계몽의 밑거름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 새마을운동은 “하면 된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며 근면·자조·협동정신으로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다. 조국 근대화의 국민적 염원으로 타오른 새마을운동은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불과 20~30년 만에 국민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 새마을운동으로부터 시작됐으며, 농촌 새마을운동은 정부와 더불어 농협이 주축이 돼 이끌었다. 농협은 새마을지도자연수원을 설립하고 새마을운동의 불씨가 되는 지도자를 양성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배출했다. 이때 가나안농군학교의 교육도 새마을운동을 만나면서 크게 빛을 발하게 되었다.

1988년 8월1일 농민운동의 선구자이신 김용기 선생께서 소천하셨다. 당시 농협중앙회의 한호선 회장은 선생의 장례를 농민장으로 모실 것을 유가족에게 제의한 후 여러 농민단체들과 뜻을 모아 ‘고 김용기 장로 농민장 장의위원회’를 조직했다. 이후 한경직 목사(영락교회)를 장의위원장으로 두고 직접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장례를 총괄했다.

장례는 농협중앙회를 비롯해 농민장에 참여한 23개의 농민단체와 농업관련 기관이 모은 비용으로 치렀다. 특히 장례를 치르고 남은 금액(1,000만여원)과 농협중앙회가 별도로 출연한 1억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보내 준 금일봉 등을 기금으로 ‘일가 기념상 재단’을 발족시켰다.

당시 농민장을 포함해 재단 설립에 실무를 맡았던 본인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 농업·농촌·농민을 위해 헌신했던 선각자의 죽음을 농업계와 농민단체, 정부가 하나가 돼 정성을 모아 추모하던 모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재단은 출범 후 ‘일가상 시상’ ‘일가조찬모임’ 등을 통해 선생의 정신을 우리 사회에 전파하고 있다. 일가재단과 가나안농군학교는 선생님 탄생 100주년인 9월5일을 전후해 ‘제19회 일가상 시상’과 ‘가나안운동 세계대회’ ‘일가상 국제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요즘처럼 우리 농업과 농촌이 국내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선생과 같은 큰 지도자가 우리 농업계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songdang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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