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의 경제이야기 (99) 인플레이션 우려

입력 : 2021-03-31 00:00 수정 : 2021-03-31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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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극복 자금 많이 풀려 물가 상승 우려 목소리 확산

실업률 증가·IT 발달 등 영향 가능성 일축…대중심리 주목

 

우리는 지난 40년간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살아왔다. 1979∼1981년의 2차 석유파동 당시 우리나라 물가가 1년에 30% 가까이 폭등했지만, 그 이후론 이같은 일이 없었다. 2000년대를 전후해선 물가상승률이 5% 이하로 안정됐고, 2019∼2020년엔 1% 이하까지 떨어졌다. 인플레이션 걱정 없는 세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세대 내에서 경험하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대표적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미 연준) 의장이나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작다고 반박하지만, 인플레이션 우려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쳐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다. 물가 상승이 예상될 경우 돈을 꿔주는 사람은 금리를 올려 받게 마련이고, 곧 금리는 오르게 된다. 다시 말해 국채 금리가 오르는 것은 물가가 오를 것을 예상하는 금융시장 참가자가 많다는 방증이다.

40년 만에 인플레이션 걱정을 다시 하게끔 된 이유는 뭘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풀린 천문학적인 자금 때문이다. 경제학 교과서엔 ‘통화량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는 것이 기본원리 중 하나로 돼 있다. 1920년대의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부터 최근의 짐바브웨나 베네수엘라에 이르기까지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중앙은행이 돈을 너무 많이 찍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국이라고 해서 이같은 돈의 공식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순 없다는 것이 비관론 진영의 생각이다. 미 연준이 지난 1년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찍어낸 돈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몇년에 걸쳐 찍어낸 돈을 이미 초과했다. 여기에 더해 미 정부는 1조9000억달러의 재정 부양책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고, 이어 3조달러의 인프라 투자 부양책을 추가로 추진하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또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확산으로 경제 활동이 빠른 속도로 정상화할 경우 사람들의 눌려 있던 소비심리가 일거에 분출해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이들의 논거는 무엇일까? 그들은 돈이 많이 풀리긴 했지만, 그 돈은 이를테면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쓴 돈이므로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한다. 지난해 미국 실업률은 14.8%까지 치솟았다.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지금도 실업률은 6%를 웃돌고 있고,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일자리는 1000만개 넘게 줄어든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임금 상승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선 ‘물가 상승→ 임금 상승→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초래될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다.

낙관론자들은 또한 경기와 물가의 관계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을 논거로 든다. 경제학 교과서엔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올라가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했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엔 경기가 좋아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일이 보편화했다. 정보기술(IT)이 급격히 발달하고, 국제화로 세계 곳곳에서 값싼 물건이 수입된 것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가 덮치기 이전엔 중앙은행들이 고물가보다는 오히려 저물가를 걱정할 정도였다. 미지근한 목욕물이 좋은 것처럼 물가도 연간 2% 정도 오르는 것이 가장 좋은데, 어떻게 해도 물가가 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낙관론자들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2011년에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컸지만, 기우에 그쳤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비관론자들은 국가 우선주의와 무역전쟁으로 글로벌 분업이 약화하는 점과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중앙은행에 더해 정부까지 가세해 막대한 돈 보따리를 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인플레이션은 아직 우려로 남아 있을 뿐 통계로 가시화하진 않고 있다. 2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달 전에 비해 0.4% 상승해 시장 전망치 수준이었고, 변동성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을 빼면 0.1%에 그쳤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의 기대 심리다. 대중 심리가 인플레이션 낙관론과 비관론 중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에 따라 세계 경제의 향배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지훈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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