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의 경제이야기 (98)차등의결권

입력 : 2021-03-10 00:00 수정 : 2021-03-1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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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평등 원칙’ 예외 조항

최대 20배까지 의결권 차이 창업자 경영권 보호할 수 있어

경영보다 개인 이익 치중 문제 국내 도입되면 재벌 악용 우려

 

모든 주식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른바 주주 평등의 원칙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차등의결권이 그것이다.

국내에는 없는 제도지만 최근 이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쿠팡 때문이다. 쿠팡이 한국 증시를 제쳐두고 미국에 주식을 상장하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엔 없고 미국엔 있는 차등의결권 때문이라는 해석이 쏟아졌다. 이런 해석이 나온 것은 쿠팡이 창업자 김범석 의장의 주식에 1주당 29표의 의결권(투표권)을 준다는 조항을 붙여 뉴욕 증시 상장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금수저’ 주식인 셈이다. 이 제도 덕에 김 의장의 의결권은 76.7%에 이르렀다.

2000년대 구글과 페이스북이 차등의결권을 활용해 상장한 이후 많은 기술기업이 이를 활발하게 도입해 유행처럼 번졌다. 2019년 미국은 기업을 공개한 기술기업 중 36%(36개 중 13개)와 비기술기업 중 16%(76개 중 12개)가 차등의결권을 채택했다.

일반적인 방식은 주식의 종류를 나누어 발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글은 세 종류의 주식을 발행하고 있다. A·B·C 등급이 그것이다. A등급은 1주당 하나의 의결권이 부여되는 보통 주식으로, 일반 투자자가 보유한다. B등급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같은 고위 경영진만 보유할 수 있는 주식으로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C등급은 직원들에게 스톡옵션 등으로 나눠주는 주식으로 의결권은 없고 배당만 받을 수 있다. 지난해 상장된 에어비앤비도 공동 창업자들에게 20배의 차등의결권이 붙은 별도의 주식을 발행했다.

이렇게 창업자들에게 과다하다 싶을 정도의 의결권을 허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경영권 보호에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외부 압력에 구애받지 말고 소신껏 경영하라는 취지다. 자칫 근시안적이기 쉬운 주식시장과 투자자들의 압력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구글의 두 창업자는 기업공개 서류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이유로 이 논리를 들었다.

능력 있는 창업자들이 기업공개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대규모 자금 유치를 위해 주식을 많이 발행하면 자신의 경영권이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등의결권이 있다면 이같은 우려가 크게 줄어 그들이 적극적으로 기업공개를 하게 될 것이다. 이는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고, 투자자들은 양질의 투자 기회를 늘리게 된다.

이같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차등의결권을 반대하는 의견 역시 팽팽하다. 반대 측은 창업자가 시장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바로 그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차등의결권만 있으면 기업 실적이 아무리 저조해도 교체될 위험이 없어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식 지분이 의결권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그러한 위험은 증폭된다. 예를 들어 창업자의 주식 지분이 5%인데 차등의결권 덕에 의결권이 50%에 이른다고 하자. 그는 50%만큼의 관심을 회사에 쏟을 것인가? 반대론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경영을 잘못해 회사에 손실이 있더라도 자신이 분담할 부분은 그 5%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주머니에서 나간 판돈 액수에 비례해 관심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또 주식 지분과 의결권의 차이가 크면 경영을 잘해서 회사 실적을 올리기보단 개인적 이익 추구에 더 연연해할 수도 있다(예를 들어 과도한 임금을 받는다든지, 개인 비행기 등 급여 이외의 혜택을 남용한다든지).

차등의결권은 2018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미국·일본 등 17개 나라가 허용하고 있다. 홍콩·싱가포르·중국 등 아시아의 주요 금융 중심지들도 우량 기업 상장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 차원에서 최근 몇년 새 차등의결권을 법적으로 허용했다.

국내에서도 정부와 여당이 차등의결권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법제화될 가능성이 크다.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상장 후 3년 동안만 차등의결권을 허용한다는 매우 제한적인 수준이지만 논란이 뜨겁다. 한국의 경우 장차 재벌 세습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 선진국과 달리 집단소송 같은 소액 투자자 보호장치가 미비하다는 점 등이 추가적인 우려사항이다.
 

이지훈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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