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력 : 2022-06-22 00:00

모든 문제 해결의 첫단추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부정하고 피해봤자 득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뇌며 어려움에 맞설 담대함 얻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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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말로 상대방과 소통한다. 인류가 원래부터 말을 잘했을까. 아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격인 호모사피엔스 때나 언어를 쓸 수 있었다고 알려졌을 뿐 그전에 존재했던 호모에렉투스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은 거의 동물과 유사한 소통능력을 갖췄을 게다.

유아기 때 인간도 마찬가지다. 갓 태어나서는 옹알거리는 소리만 낼 수 있다. 또래 집단과 어울리고 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우며 쓸 수 있는 단어 가짓수를 늘리고, 자라면서 자신이 아는 단어를 엮어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하게 된다.

말하는 능력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습관이 붙는다. 각기 자신 있는 표현방식이나 문장구조가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이 좋아하는 단어나 문장은 자주 입에서 나오게 돼 있다. 그래서 사람마다 말버릇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버릇처럼 자주 쓰는 표현이 몇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다.

언제부터 이 말을 자주 쓰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대학 시절부터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필자에게 닥치는 상황이 그리 복잡할 것도 없었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도 많지 않았다.

한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상황이 내 앞에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우왕좌왕·좌충우돌했는데 그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이 습관처럼 입에 붙었는지도 모른다.

이 표현은 필자가 정신장애 환자와 상담하면서 자주 하는 말버릇이기도 하다.

잠깐 국어사전을 펼쳐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사전에 ‘앞 내용에서 예상되는 결과와 다르거나 상반되는 내용이 뒤에 나타날 때 앞뒤 문장을 이어주는 말’이라고 풀이돼 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들, 아니 보통 사람들도 스스로 해결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면 상황을 회피하려는 데 익숙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도무지 믿기질 않아.”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이…재수가 없었을 뿐이겠지.”

이런 말을 되뇌며 어떻게든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외면하려고 든다. 이렇게 한다고 이미 벌어진 일이 이전으로 돌아갈 리는 만무하다.

타조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타조가 맹수나 사냥꾼을 만나면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응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면 종국에는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어수룩한 타조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해낸 단어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이 표현은 자기 앞에 일어난 상황을 직시하고 인정하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어려운 국면을 타개해나갈 수 있다.

난리가 났는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며 현실을 거부하면 결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와 같은 우리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모든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제대로 현실을 인식하려는 노력’이라고 얘기한다.

내 사고체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단어가 정착한 것은 이런 속담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말을 계속해서 쓴다. 먼저 나에게 거는 최면 같은 것이고, 정신장애로 고통받는 환자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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