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순리를 따를 때 경지에 도달한다

입력 : 2020-07-10 00:00

오직 성공만 위해 공부한다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게 돼

도덕성 없는 지식인 될 수 있어

배움은 자신의 일과 삶에서 올바른 길 찾기 위한 과정

자기완성의 경지를 추구해야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오생야유애 이지야무애).” <장자>의 ‘양생주’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 글을 통해 흔히 ‘우리 삶에는 한계가 있기에 살아가는 내내 시간을 아껴 공부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지만, 장자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약간 다르다. 이어지는 다음 문장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면 위태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식을 추구하는 자가 되려 하면 더욱 위험할 뿐이다. 착한 일을 해도 명성을 위해서 하지 말고, 악한 일을 해도 형벌에 이르게 하지 말라. 오직 중도를 취해 원칙으로 삼는다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장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가장 최선으로 봤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여주면 근심하게 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면 슬퍼한다’는 <장자>의 유명한 말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이며, 인위적으로 더 좋게 만들려고 하면 오히려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는 위의 글에서도 지나치게 열심히 살면 다치니 적당히 중도를 취하며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공부뿐만이 아닌 인생의 모든 측면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장자의 주장을 제대로 알려면 이 글 다음에 실린 우화까지 살펴봐야 한다. 소 잡는 기술이 신의 경지에 이른 백정의 이야기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뜻하는 ‘포정해우( 丁解牛)’의 고사다.

군주인 문혜군이 포정의 소 잡는 기술이 놀라워 도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포정이 대답했다.

“제가 의지하는 것은 손의 기술이 아니라 제가 즐기는 도(道)입니다. 도는 기술보다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 제 눈에는 소가 아닌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나자 저는 소 자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저는 눈이 아니라 영감으로 소를 대할 뿐입니다. 감각과 지각이 멈추면 영적인 힘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소를 잡을 때 뼈와 근육을 건드리지 않고 소의 몸이 생긴 대로 빈 곳을 찾아 칼질을 합니다. 그래서 19년간 칼을 한번도 갈지 않아도 마치 방금 간 것처럼 날카롭습니다. 특히 근육과 뼈가 뒤엉킨 곳은 더욱 집중해 칼질하면 순식간에 뼈와 살은 나눠지고, 소는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 해체됩니다.”

문혜군은 이 말을 듣고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양생(養生)의 방법을 깨달았다”며 탄복한다. 무리하지 않고 순리를 지킬 때 몸과 마음의 건강이 지켜진다는 깨달음이다. 하지만 장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더욱 고차원의 이치다. 먼저 어떤 일이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나 목적을 잊을 정도로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정에게 소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다음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행하는 영적인 차원, 다시 말해 도에 이를 수 있어야 완성될 수 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극단을 추구하게 되면 무리하게 일을 해야 하기에 몸은 지치고 도구는 망가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장자는 모든 일을 자연의 이치에 맞게, 순리에 따라 지혜롭게 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19년이나 쓴 칼이 방금 숫돌에 간 것처럼 날카로울 수 있고, 일을 하는 사람 역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일을 통해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 치중하거나 오직 출세라는 목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기완성의 경지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때 오직 성공만을 위해 공부한다면 그 공부는 극단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도덕성이 없는 냉혹한 지식인이 될 수도 있다.

배움은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일과 삶에서 올바른 길(道)을 찾기 위한 모색의 과정이 돼야 한다. 그럴 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진정한 배움을 추구할 수 있고, 그 배움은 평생 계속될 수 있다. 또한 그 배움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다.

조윤제 (인문고전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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