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빠른 물고기냐 느린 물고기냐

입력 : 2020-06-19 00:00

4차산업혁명 큰 특징은 초가속 번개보다 빠른 일상생활 다가와

한국, 초고속 정보 인프라 갖춰 농업도 규모 아닌 속도에 초점을

고령농 퇴출 막는 안전장치 필요 청년과 세대간 협업 ‘좋은 대안’
 


“이제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 시대가 아니라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이기는 시대로 바뀌었다.”

4차산업혁명을 주창해 유명해진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지금부터는 스피드 역량이 생존 여부를 결정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지구촌에서 큰 것이 작은 것을 이기는 시대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했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이끌었다.

그러나 ‘제3의 물결’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보화사회가 다가오면서 세상은 ‘빠른 자’와 ‘느린 자’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정보통신망이 깔리고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빛의 속도 즉, 광속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일찍이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강자와 약자’라는 구조에서 ‘빠른 자와 느린 자’로 권력 이동이 일어나리라 예측했고, 이는 대부분 적중했다. 이스라엘·싱가포르·네덜란드 등은 작은 나라지만 부유한 선진국이다. 국가운영체계가 빠르기 때문이다.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서도 ‘규모의 경제’ 대신 ‘속도의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이 아니라 빠른 기업이 유리해진 것이다. 요즘 쿠팡이나 마켓컬리 같은 곳은 ‘로켓배송’ ‘새벽배송’을 내걸고 스피드 경쟁을 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전날 저녁에 식자재를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아파트 문 앞에 가져다놓는다. 이를 위해 전국 곳곳에 첨단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정보통신망과 배달인력체계를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쟁이 스피드 경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초스피드 경쟁으로 바뀌게 된다. 4차산업혁명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초가속’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밝힌 정보를 보면 초고속 인공지능(AI)반도체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 AI반도체는 AI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기술이다. AI반도체는 동전만 한 크기에 1만6384개에 달하는 연산장치가 집적돼 1초당 40조번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번개보다 빠른 일상생활이 다가오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기에 우리 농촌이 사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농토가 넓지 않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기는 앞으로도 어렵다. 한농가당 농지면적이 적은 것을 우리 농업의 구조적 한계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초가속 시대를 맞아 이제는 규모가 아니라 속도에 농업 경쟁력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한국은 빠른 국가다. 전국에 광케이블이 깔렸고 컴퓨터·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1위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서도 이런 정보 인프라 덕분에 완벽에 가까운 동선 추적과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했다.

우리나라는 이런 스피드체계를 갖추고 있고 이를 농업에 잘 적용하면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한국형 스마트농업 구현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농산물은 생산 못지않게 판매·유통·소비를 잇는 가치사슬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혁명적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스마트기술로 연결돼 있으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소비할 농산물이 현재 어느 정도 자라고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농촌에 스마트기술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또 기존 전통농업에 종사하는 고령농들이 일시에 퇴출당하는 일이 없도록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드론으로 씨를 뿌리고 농약을 친다. 미국은 영농면적이 넓으니까 경비행기까지 동원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면적이 좁아 불가능했다. 그런데 드론으로 이런 일을 하니 수지타산이 맞게 된 것이다. 연세 드신 농민들이 드론 조종을 배워 운용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청년드론지원단이 생겨나 고령농들을 돕고 있다. 돈을 받기도 하고 무료 봉사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농촌이 사는 길은 어르신과 젊은이의 협업이 아닐까. 기존 농업을 스마트농업으로 연착륙 전환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면 세대간 협업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인류에게는 이제 신문명이 다가오고 있다. 초가속 시대가 되면 늘 긴장하면서 살게 되고 스트레스도 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스마트기술이 확산하고 로봇이 일하면 인간은 더 많은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스피드 경쟁을 한다고 해서 늘 바삐 살아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남아돌아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빠름과 느림을 적절히 활용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빠름과 느림의 신문명 시대를 맞이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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