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중심을 잡아라

입력 : 2020-05-29 00:00 수정 : 2020-05-31 00:01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은 공자와 춘추시대 암군(暗君·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 중의 한사람이었던 위령공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위령공이 진법(陣法)에 대해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에 대해서는 일찍이 들어서 알고 있지만, 군사에 관한 일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공자는 위나라를 떠나버렸다. 잠깐의 대화로 공자는 ‘위령공은 함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어리석은 군주’라는 것을 간파했다. 인(仁), 즉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했던 공자에게 전쟁에만 관심을 두는 군주는 하루도 함께하기 어려운 상대였던 것이다.

왕의 총애받던 미소년 미자하

행동거지엔 변함 없지만 미운털 박히자 벌받고 내쳐져

편향에 빠지기 쉬운 인간 마음 바른 말보단 좋아하는 사람 신뢰

공정하려면 중용 미덕 지켜야


위령공은 <논어>를 비롯해 많은 고전에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저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한비자> ‘세난편(說難篇)’에 실린 위령공 고사다.

위령공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다. 위나라 법에 임금의 수레를 몰래 탄 자는 월형(발꿈치를 베는 형벌)에 처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나자 미자하는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임금이 이를 듣고선 “효자로다. 어머니를 위해 죄를 범하는 것도 잊었구나”라고 말했다. 또 하루는 임금과 더불어 복숭아밭을 거닐다가, 복숭아가 달자 자신이 먹던 절반을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얼마나 나를 사랑했으면 이 맛있는 복숭아를 제가 다 먹지 않고 과인에게 바치는구나”라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고운 얼굴도 시들고 임금의 총애도 식게 됐다. 어느 날 미자하가 작은 죄를 짓자 임금은 이렇게 말했다. “미자하는 원래 그랬다. 일찍이 나의 수레를 내 명령이라고 속여 탄 일이 있으며, 또한 제가 먹던 더러운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적이 있었다.” 그러더니 미자하에게 큰 벌을 주고 내쳐버렸다.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변한 것은 임금의 마음이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임금에게 총애를 받고 있을 때는 모두 좋게 보였지만, 임금의 총애를 잃었을 때는 사소한 잘못도 못마땅하게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예전에는 좋게 보였던 것까지 모두 싸잡아 괘씸죄까지 덧붙여져 벌을 받게 된다. 따라서 <한비자>에서는 “간언을 하고 담론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임금이 좋아하고 미워하는 바를 살핀 다음에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충고한다. 임금이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임금을 쉽게 설득할 수 있지만, 임금이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면 아무리 말을 잘해도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결코 해서는 안되는 금기를 일러주고 있는데, 바로 역린(逆鱗)의 비유다.

“대저 용이란 동물은 유순하여 길들이면 사람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턱밑에 지름 한자 정도 되는 역린이 있어, 만약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용은 반드시 그 사람을 죽인다. 임금에게도 역린이 있어 유세객이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으면 설득에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고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해준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하구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특히 윗사람을 설득하려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바른 소리도 믿음을 잃은 사람이 하게 되면 그 말은 통할 수 없다. 설사 올바르지 못한 말이라고 해도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하게 되면 그 말을 믿게 된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가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건드려서는 안된다. 자존심이나 콤플렉스와 같은 것들로, 바로 한비자가 말하는 역린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 본능적으로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공정함을 잃기도 하는데, 이때 새길 만한 말이 있다. <논어>에 실려 있는 “군자는 말만 듣고 사람을 등용하지 않으며 사람을 보고 말을 버리지 않는다”다. 그 말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을 믿고 등용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사람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의 말을 인정해서도, 사람이 싫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의견까지 버려서는 안된다. 반드시 때와 상황, 그리고 처해 있는 입장에 따라서 지혜롭게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용(中庸)’의 덕목이다.




조윤제는…

▲인문고전연구가 ▲저서 <이천년의 공부> <천년의 내공> <말공부>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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