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소, 세상을 바꾸는 가축

입력 : 2020-03-27 00:00 수정 : 2020-03-28 23:44

소 활용하며 인류 생산력 향상 인간 중심 세계 구축 크게 기여

종교·철학 등 문화 발전도 견인 우경시대 후엔 식량으로 큰 역할

수천년간 인간에게 필수적 존재 국내에 박물관 하나 없어 ‘씁쓸’
 


인류 역사상 소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가축이다. 가축은 인간이 필요에 따라 길들인 동물을 말한다. 소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생산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인류가 소를 생산수단으로 사용한 시기는 대체로 고대 문명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메소포타미아·중국·인도·이집트 등 고대 문명의 발상지에서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기원전 4000~2200년에 소를 생산수단으로 사용해서 생산력을 크게 높일 수 있었다.

소는 인류가 인력으로 농사짓던 단계에서 축력으로 농사짓는 단계로 나아가게 만든 주인공이다. 소를 이용한 농사는 사람을 이용한 농사보다 최대 10배 정도 효과가 높다. 소를 통한 생산력의 향상은 단순히 생산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말에 소를 이용한 경작, 즉 우경(牛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우경으로 생산력이 크게 높아져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변화시켰다. 그 결과 중국인들은 신화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춘추시대 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탄생은 곧 우경 덕분이었다. 붓다·소크라테스·공자·예레미야·맹자·에우리피데스·플라톤 등 이른바 ‘축의 시대’ 사상은 여전히 인류 지성사의 나침반으로 남아 있다.

소는 축력을 대신한 동력 기계의 등장 전까지 매우 신성한 동물이자 귀한 존재였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사람 이상으로 소를 숭배했으며, 불교에서는 소를 ‘마음’에 비유했다. 우리나라 사찰 건물에는 십우도(十牛圖) 벽화, 스님이 머무는 심우실(尋牛室) 등이 많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제후가 회맹할 때 소를 잡아서 피를 나눠 마시고 하늘에 맹세했다. 아울러 구리로 종을 만든 후 마지막으로 소의 피를 발랐다. <맹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러한 의식을 ‘흔종(鍾)’이라 불렀다. 제사 때 사용하는 제물을 의미하는 한자인 희생(犧牲)이 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뿔이 달린 소(牛), 암소를 의미하는 빈(牝), 수소를 의미하는 모(牡)는 모두 농경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은나라 갑골문자에 등장한다. 소를 의미하는 캐틀(Cattle)은 ‘동산(動産·Chattel)’과 ‘자본(Capital)’에서 유래했다. 이는 그만큼 소의 재산가치가 높았다는 증거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견우와 직녀 설화도 농경 사회의 산물이다. 한해 중 음력 7월7일에 견우와 직녀가 한번 만나는 칠월칠석 설화의 내용이 곧 전형적인 농경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소를 끌고 여자는 비단을 짜는 모습은 소와 비단이, 즉 농경 사회에서 먹는 문제와 입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유래한 견우와 직녀 설화는 7세기초의 <형초세시기>에 수록돼 있다. <형초세시기>는 현재 양쯔강 중류지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우한시가 있는 후베이성의 풍속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5세기초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견우와 직녀 설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소를 축력으로 이용하던 시대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식용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생활이 나아지면서 쇠고기 소비가 급증했다. 이에 소를 식용으로 키우는 농가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체로 꼴을 먹으면서 되새김질하는 이른바 ‘반추동물(反芻動物)’은 현재 30억마리 정도이고, 그중 소는 14억마리 이상이다. 반추동물 중 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반이다. 이같은 통계는 그만큼 소가 가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식용을 위한 가축의 수가 늘어나면서 적잖은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중 온실가스와 황사를 빼놓을 수 없다. 반추동물이 생성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온실가스의 6% 이상을 차지하고, 가축이 먹어치우는 풀은 황사를 발생시킨다. 소의 사육면적만 해도 전세계 토지의 24%를 차지하며, 소가 먹는 곡식은 수억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전세계 소의 무게는 70억 세계 인구의 무게를 능가한다.

소는 수천년 동안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존재였다. 인간이 소와 만나서 만든 역사와 문화도 매우 풍부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소 역사 박물관’이나 ‘소 문화 박물관’조차 없다. 소가 인간에게 준 도움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1961년 소띠해에 태어났다.
 



강판권은…

▲나무 인문학자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저서 <숲과 상상력> <나무예찬> <나무철학> <회화나무와 선비문화> <선비가 사랑한 나무>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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