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소설 ‘네메시스’

입력 : 2020-03-13 00:00 수정 : 2020-03-14 23:49

1940년대 미국 전염병 다뤄

안전지대였던 부유층 캠프서 주인공 이직해온 후 발병 시작

재난적 결과에 자책하는 이야기

심란한 시국…서로 힘껏 도와야 스스로 불안 달래는 시간도 필요



2018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 로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은 <네메시스>다. 그는 타계하기 약 8년 전인 2010년에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더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는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는데 ‘쓰는 것과의 투쟁은 이제 끝났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의 문학 인생이 얼마나 치열했던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필자는 필립 로스의 엄청난 팬인 바, 너무나 좋아하면 말을 아끼게 되듯이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좋은 것에 대한 가장 큰 찬사는 ‘좋다’라는 말뿐이다. 왜, 어째서라는 이유 없이, 그냥 ‘좋다’는 말.

그러므로 <네메시스>에 대해서도 감상평 같은 것은 관두고 소개만 하는 것이 좋겠다. 외출하기도 어려운, 아예 외출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이런 시국에 평소에는 잘 안 보던 책이라도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실 터이다. 이 소설은 마침 전염병을 다루고 있다. 1940년대에 미국을 휩쓸었던 폴리오바이러스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한 청년의 이야기다. 폴리오바이러스는 주로 어린아이들이 감염돼 소아마비 증상을 일으키거나 극단적인 신체 기형을 남기는 병으로 알려졌다. 치사율도 높았던 모양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버키는 시력문제로 군입대를 면제받은 후 어린이 놀이교사를 하고 있던 인물이다. 폴리오바이러스가 창궐한 후에도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던 버키는 여자친구의 권유를 받고 부유층 아이들의 캠프 체육교사로 이직하게 된다. 바이러스 감염으로부터 안전지대로 알려진 이 캠프에서 아이들은 최상의 보호를 받으며 쾌적한 생활을 영유하고 있다. 그러나 버키가 이곳으로 온 후 이곳에서도 급작스럽게 폴리오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토록 안전하게 여겨지던 이곳에 전염병은 어떻게 온 것일까.

이 소설이 다루는 것은 전염병 창궐의 무서움이나 그로 인해 세계가 맞닥뜨리게 되는 대재난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괴로워하는 인물, 의도치 않았던 선택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일련의 재난적 결과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묻고 또 묻는 한 인물의 이야기다.

<네메시스>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아시겠지만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천벌 혹은 징벌의 신이다. 복수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살펴보니 작가 본인은 ‘운명 불문, 어떤 이를 골라 희생자로 만드는 극복할 수 없는 힘’을 네메시스가 상징하는 바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소설이 재난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면 이 ‘극복할 수 없는 힘’이란 당연히 전염병이나 전쟁 같은 것이겠으나 그것이 인간에 관한 질문이 된다면 다른 이야기가 될 터이다.

이것은 어쩌면 속수무책으로 닥쳐온 개인의 운명에 대한 선과 악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불가항력적으로 다가오는 불운과 재난에 맞선 개인의 의지는 어디까지 선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 엄격할 수 있는가.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통해,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그 인물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볼 수밖에 없다. 이 책이 번역 출판되면서 책 표지에 소개된 평들이 인상적이다.

‘인간 감정에 관한 잔인할 정도로 정직한 진술들’이라는 평이 먼저 보인다. ‘이웃에게 치명적인 기세로 곤경이 닥치는 시절을 살아가는 한 개인과 그 이웃들에 관한 이원적인 초상’이라는 평도 보인다. <네메시스>의 주인공은 자신이 혹시 ‘보이지 않는 화살’ 즉 바이러스의 전파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을 평생 거두지 못했다. 그 스스로 피해자였음에도 그랬다. 그가 자신에게 내린 가혹한 자기 징벌에 대해 누구도 그 고통을 나눌 수 없었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 않았으나 주인공 버키는 끝끝내 괜찮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 본인이 평생에 걸친 자신의 문학 작업에 대해 던지는 엄격한 질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구도 대신 대답해줄 수 없고, 대신 위로해줄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끝없는 질문. 그래서 서늘하다.

너무나 심란한 시국이다. 해답이 필요한 여러가지 질문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선은 서로 힘껏 돕고 위로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스스로 불안을 달래는 시간도 많이 필요하겠다. 손에 잡히는 어떤 책이라도 펼쳐보며 잠깐 시간을 달래보시기 바란다.
 



김인숙은…

▲소설가 ▲저서 <모든 빛깔들의 밤> <소현> <안녕, 엘레나> <제국의 뒷길을 걷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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