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진정한 지식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난다

입력 : 2020-02-21 00:00 수정 : 2020-02-22 23:51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 출세·성공·과시가 목적

오만한 사람되기 쉬워

반대로 나를 위한 배움은 자신의 성장·수양에 초점

가르침 실천해야 의미 있어



<논어>에는 공자가 학문에 대해 말했던 것들이 거듭해서 실려 있다. 제자들과 위정자들에게 공자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는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는지, 공부가 개인의 삶과 세상을 바꾸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끊임없이 가르쳤다. ‘헌문’에 실려 있는 ‘위기지학 위인지학(爲己之學 爲人之學)’이란 성어는 공부를 하는 올바른 자세를 말해준다.

“옛날 학자는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고, 요즘 학자는 사람들을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여기서 ‘사람들을 위한 공부(爲人之學)’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다. 출세와 성공을 위한 공부로 남에게 과시하려는 목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공부’로 직역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로 해석하는 것이 공자의 뜻에 더 합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공자는 항상 그 시대의 학자들이 옛 학자들의 올바른 뜻에 따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옛 학자들이 했다는 ‘자신을 위한 공부(爲己之學)’란 자신의 성장과 수양을 위한 공부로 진정한 공부의 뜻에 합당한 공부를 말한다. 남과 비교하는 공부가 아닌, 날마다 성장하기 위한 공부,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공부다. 하지만 공자가 성공과 출세를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이렇게 공부할 때 뜻을 이룰 기회, 즉 성공과 출세가 저절로 찾아온다고 했다.

공자의 학문을 이어받은 전국시대의 학자 순자(荀子)는 이렇게 표현했다. “군자의 학문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고, 소인의 학문은 녹위(位)를 얻기 위함이다.”

순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묻지도 않았는데 대답하는 것을 오만함이라 하고, 하나를 물었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뽐냄이라 한다. 오만함도 뽐냄도 그릇된 것이니 군자는 메아리처럼 오직 조화롭게 반응할 뿐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오만해지고 뽐내게 된다. 말해야 하지 않을 때 말하게 되고 하나만 말해도 될 일을 두가지 세가지를 더 말하면서 지식을 과시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모두 겉치레에 불과한 쓸데없는 말이다. 올바른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조화로운 말과 행동으로 적절하게 드러낼 뿐이다.

<예기> ‘내칙’에는 공부하는 사람의 조화롭지 못한 말과 행동을 경계하는 글이 실려 있다.

“많은 것들을 폭넓게 배우되 설익은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 하지 마라. 지식과 덕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쌓아가되 밖으로 드러내 보이지 마라(博學不敎 內而不出·박학불교 내이불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얕은 지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깊은 성찰과 내면으로 쌓아가는 노력이 없기에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 또한 이들은 함부로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거나 남을 가르치려 든다. 남을 가르치려는 행동은 자신을 드러내려는 과시욕과 남보다 자기가 더 낫다는 교만에 기인한다. 그래서 맹자는 이러한 모습을 두고 “사람들의 병폐는 남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고 경계했다. 설익은 지식으로 남을 가르치려고 들면 자신은 물론 남까지 망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지식을 과시하지 않는다. 특히 남을 함부로 가르치지 않는다. 진정한 학문이란 함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깊이 쌓아가는 것이다. 내면에 쌓이고 쌓여 자연스럽게 겉으로 배어나오는 것이 진정한 학문과 수양의 모습이다.

순자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군자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마음에 붙어서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나타난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온다. 입과 귀 사이는 겨우 네치에 불과하니, 어찌 일곱자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

배운 것을 입으로 옮기기에 급급한 사람은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가르침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다. 그리고 일과 삶에서 실천하는 것이 공부의 마지막 순서다. 따라서 삶이 계속되는 한 공부는 끝이 없다.
 



조윤제는…

▲인문고전연구가 ▲저서 <이천년의 공부> <천년의 내공> <말공부>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등 다수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