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귤과 감자

입력 : 2019-12-20 00:00 수정 : 2019-12-21 00:07

‘우리 귤’에 대한 로열티 재배하는 농민들 울리고 그 귤을 먹는 국민도 슬퍼

감자는 귤과 달리 서양 선교사가 전파했지만 이제는 ‘우리 감자’로



한동안 해외에서 머물 일이 있었다. 며칠이 아니라 근 한달 동안 우리나라 음식을 먹지 못했다. 한동안은 그럭저럭 견디면서 살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익숙한 냄새를 맡거나 식재료만 봐도 그쪽으로 마음이 갔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그중 귤이 반가웠다. 꼭 우리 귤처럼 생긴 게 맛도 그러려니 했다. 남의 나라 귤 먹어본 게 한두번이 아닌데도 그랬다. 서양 사람들이 흔히 만다린이라고 부르는 그 귤을 먹을 때마다 나는 어쩐지 속아 넘어가는 기분이 들고는 했는데, 맛도 달지 않은 데다가 때때로 씹히는 씨 때문에도 그랬다. 겉으로 생긴 건 같아도 도무지 이게 우리 귤이 아니다.

배는 다르다. 배는 아예 대놓고 다르게 생겨서 그 배맛이 영 우리 배맛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럼 그렇지’ 하고 말아버린다. 언젠가 미국 서부지역의 한 슈퍼마켓에서 생긴 것부터가 우리 배 같은 걸 발견했었는데, 라벨에 붙은 그 품명 자체가 ‘한국 배’였다. 반가운 마음까지는 그렇다 치고 그 매대 앞에서 으쓱해지는 건 무슨 까닭인가. 실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으쓱함이겠다. ‘배가 이래야 배지, 이게 바로 한국 배지’ 하는 마음 말이다.

오래전의 책을 읽다가 조선의 밥상에 관한 글을 보았다. 200여년 전, 이양선을 타고 조선의 해안을 찾았던 서양인의 기록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후 두척의 큰 배가 다가왔는데, 그 배에는 우리 선원 모두를 위해 완벽하게 차려진 조선식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는 면발의 파스타 베르미첼리(Vermicelli)가 들어 있는 닭수프, 얇게 썬 돼지고기, 샐러드, 그리고 다양한 케이크와 꿀항아리, 또 와인도 있었다.” 파스타가 들어 있는 닭수프란 아마도 잔치국수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얇게 썬 돼지고기는 편육을 말하는 듯하고, 샐러드란 분명히 김치와 나물들이겠다. 그리고 각종 떡과 그 떡을 찍어 먹을 조청이 있었을 터이고, 와인은 당연히 조선 술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그냥 밥상이라기보다는 잔칫상이라고 할 만한 상차림이다. 이런 풍성한 접대를 받은 사람들은 1832년 조선의 서해안에 접근해 통상무역을 요구했던 애머스트호의 선원들이다. 위의 기록은 그 배의 선장이었던 린제이 보고서에 남아 있다. 이때까지 조선은 서양인들에게는 완전히 금단의 땅이었다. 거의 누구도 가보지 못했으며, 어쩌다 왔다고 해도 환대받지 못했던 땅이었다. 이들이 이날 이런 접대를 받았던 것도 ‘배불리 드시고 빨리 가시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오랜 항해에 지쳐 낯설고 두려운 나라의 바다에 도착한 이 배의 선원들에게는 황홀한 밥상이 아닐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누군가는 외쳤을지도 모르겠다. “이건 파스타가 아니야!”

애머스트호에는 루터교 목사인 귀츨라프도 타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를 찾은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 조선의 국왕에게 한문으로 번역된 성경을 전달하려고 했고,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가 한 여러가지 일 중에 역사상 길이 남을 일은 또 있다. 바로 감자를 이 땅에 전파한 것이다.

“저녁식사 후 우리는 감자를 심기 위해 상륙했다. 귀츨라프가 명료하게 써놓은 감자 재배법과 함께였다. 우리는 감자가 자라기에 가장 좋아 보이는 땅에 감자싹을 100개 정도 심고 재배법을 적은 종이를 밭주인에게 주었다. 주인은 감자를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는데, 이튿날 가보니 밭에 울타리를 쳐두었다.”

이 땅에 감자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귀츨라프의 목적은 전도였다. 그는 국왕에게뿐만 아니라 관리들에게, 그리고 주민들에게도 성경을 전파하려고 노력했는데, 굳이 그가 주려고 하는 성경책을 조선사람들은 한사코 받지 않으려 하기도 했다.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 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말씀은 순식간에 전파되지 못하였으나 감자는 순식간에 뿌리를 내렸다. 서양인이 전해주었으나 우리 감자가 되었다.

귤은 그렇지가 못한 모양이다. 우리 귤이 일본에 지급해야 하는 로열티는 재배농민들만 울리는 게 아니라 그 귤을 먹는 우리들도 울린다. 어디다 대고 외쳐야 할까? “이건 우리 귤이야!”라고.
 



김인숙은…

▲소설가 ▲저서 <모든 빛깔들의 밤> <소현> <안녕, 엘레나> <제국의 뒷길을 걷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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