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역린이라도 건드려야 하는 이유

입력 : 2019-09-20 00:00 수정 : 2019-09-21 23:53

역린, 쉬운 말로 ‘아픈 곳’ 왕에겐 자존심·신념·주관 자극할 경우 화 입을 수도

윗사람에게 충고 힘들지만 필요할 때는 반드시 해야 알면서 안하는 것 또한 ‘불충’



동북아권에서는 옛날부터 왕을 전설 속 신성한 동물인 용에 비유했다. <한비자>에 실려 있는 ‘역린(逆鱗)’의 고사다.

“용이란 상냥한 동물로, 잘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런데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역린이다. 역린은 용의 목 아래에 있는 한자 정도 되는 거꾸로 난 비늘인데, 만약 이 비늘을 건드리면 용은 미쳐서 날뛰게 된다. 그곳을 건드리는 사람은 그가 누구라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 군주 역시 용과 같아서 역린이 있는데,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역린은 오늘날로 치면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아픈 곳’이다. “감히 아픈 곳을 건드리다니…”라고 운운하는 것이 그것을 말한다. 또한 왕의 자존심도 역린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에 자존심이 상했을 때 절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성군으로 알려진 당 태종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신과 장기를 두어 크게 이긴 당검이라는 신하를 작은 고을로 쫓아 보내고, 다른 신하를 시켜 “만일 당검이 불만을 토로하면 바로 목을 베어버려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심지어 당검은 당나라의 창업공신이자 당 태종과 오래전부터 교류하던 사이였다. 자존심 앞에서는 어떤 사람도 유치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고사는 생생히 보여준다. 물론 당 태종은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명령을 철회했다. 또 한가지 역린은 군주가 가진 신념과 주관이다. 만약 명예를 중시하는 군주의 명예를 해쳤거나, 재물을 소중히 하는 군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신념이나 주관은 한 사람의 가치관을 말해주는 것으로 삶을 살아가는 목적과 같은데, 그것에 상처를 받게 되면 누구라도 견디기 어렵다. 심지어 한 나라의 군주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제아무리 군주의 역린이라고 해도 건드리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먼저,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흔들릴 때다. 신속히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은 당연히 충고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이때는 충고가 아니라 몸으로라도 막아야 한다. 그다음은 군주의 신변에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때다. 만약 그것을 알고도 당장 말하기가 두려워 방기한다면 나중에 원망을 듣게 된다. 또한 리더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상황을 모르고 있을 때도 당연히 깨우쳐줘야 한다.

초·한 전쟁 당시 항우는 경쟁자였던 유방을 죽이려고 홍문의 연회를 연다. 연회장에서 항우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유방은 변소를 간다는 핑계를 대고 간신히 항우의 장막을 벗어났다. 유방은 빨리 도망가자고 재촉하는 신하 번쾌에게 항우에게 미처 인사를 하지 못했다고 하며 망설인다. 이때 번쾌는 유방을 다그치며 말했다.

“큰일을 할 때는 사소한 예의를 따지지 않고, 큰 예의를 행할 때는 사소한 허물을 마다하지 않는 법입니다. 지금 저들은 칼과 도마이고 우리는 그 위에 놓인 물고기 신세인데 무슨 인사를 한다고 합니까?” 짧은 대화이지만 확실한 비유로 유방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준다. 우유부단한 유방에게, 목숨은 물론 천하대사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상황임을 확실히 깨닫게 해준 것이다.

“충언은 듣기 싫지만 행함에는 도움이 되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도움이 된다(忠言逆耳利於行 毒藥苦口利於病·충언역이리어행 독약고구리어병).”

역시 유방의 고사로, 아방궁의 호화로움에 취해 안주하려는 유방에게 참모 장량이 신하들의 충언을 듣기를 권하며 했던 말이다. 역사가들은 유방이 압도적인 열세를 딛고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로 신하들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던 것을 들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처럼 귀에 거북한 충고를 탁월한 비유로 말할 수 있었던 신하가 있었기에 유방의 리더십이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충고는 어떤 상대에게도 하기 어렵다. 특히 윗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해야 할 때는 반드시 해야 한다. “모르면서 말하는 것은 무지함이고 알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다.” 역시 <한비자>에 실려 있는 글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만이 속이는 것이 아니다. 부하로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역시 속이는 것이다.
 



조윤제는…

▲인문고전연구가 ▲저서 <이천년의 공부> <천년의 내공> <말공부>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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