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곡학아세’ 세상에서 돌아보는 진정한 학문의 의미

입력 : 2018-07-13 00:00

소크라테스·공자 등 옛 현인 본인의 무지함 스스로 인정 겸손히 학문 통한 수양 힘써

출세·명예 위한 그릇된 공부 학문 악용해 세상 어지럽혀 결국 ‘곡학아세’ 세태 낳아
 


서양철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을 듣고 의문을 품게 된다. 자신이 무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당시 지혜롭다고 이름난 사람들, 많은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찾아 대화를 나눴지만 그들 중에 지혜로운 사람을 찾지 못한다. 단지 자신과는 달리 그들 스스로는 무지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무지(無知)의 지(知)’, 즉 스스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기에 자신이 지혜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동양철학의 원조인 공자도 그 철학의 시작은 ‘아는 것이 없다’는 무지의 자각이었다. 공자는 사람을 아는 것의 정도에 따라 넷으로 구분했다. <논어> ‘계씨’ 편에서 공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그다음이다. 곤란한 지경에 처해 배우는 사람은 또 그다음이고, 곤경에 처해도 배우지 않는 사람은 최하다”라고 말했다. 태어나면서 아는 사람은 성인(聖人), 즉 하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을 말한다. 배워서 아는 사람은 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최고의 군자로 꼽혔던 공자는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해 열심히 배워서 아는 사람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나면서부터 아는 성인의 경지가 아니라 열심히 수양하고 공부했기에 학문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한’ 편에서도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나는 아는 것이 없다”라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스승을 성인으로 우러러보는 여러 제자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무지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철학자들은 모두 ‘아는 것이 없다’는 자각에서부터 열심히 배움을 추구했다. 또한 스스로 아는 것이 없다고 인정할 수 있는 솔직함을 학문의 바탕으로 삼았다. 공자는 제자 자로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배움은 스스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유명한 경구(警句)다. 이런 솔직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임할 때 사람들은 수양과 배움의 성장을 위해 공부할 수 있다. 만약 스스로 많이 안다고 자만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공부한다면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없다. 당연히 학문의 진전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헌문’ 편에 실린 ‘위인지학(爲人之學)’과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성어가 그것을 말해준다.

“옛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공부했는데, 오늘날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한다(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여기서 ‘위기지학’은 스스로를 위한 공부, 즉 자신의 수양과 내면적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공부를 말한다. 완성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위인지학’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아 출세하고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공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공자는 그 당시 사람들이 오직 출세만을 위해 공부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학문을 통해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것이다.

바로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고사성어가 가리키는 바와 같다. <한서>에 실린 고사로, 원고생(轅固生)이라는 강직한 노학자가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젊은 학자를 가르친 글에 있다. “지금 학문의 길에는 어지럽고 세속적인 글만 유행하고 있다. 그대는 학문을 좋아하는 젊은이니 올바른 학문으로 세상을 바로잡고,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지 말기 바라네.”

오직 권력과 부를 목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자신이 배운 학문도 아부의 수단으로 삼아 윗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서면 오만으로 사람들을 핍박하고 아부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학문이 자기를 내세우는 교만과 출세의 수단이 돼버린 ‘곡학아세’의 세태다. 이러한 때 겸손과 올바름으로 세상을 바로 세우는 진정한 학문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조윤제는…

▲인문고전연구가 ▲저서 <천년의 내공> <말공부>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내가 고전을 공부하는 이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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