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애플밸리의 꿈

입력 : 2021-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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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사과 재배하는 농가 수급불안·기후변화로 어려움도

‘애플밸리’ 만들기 나섰지만 책임 있는 주체 없어 실천 못해

농협·주민·지자체 협력해야 소멸위기 농촌문제 해결 가능

 

오랫동안 논의해왔던 ‘고향사랑기부제(고향세)’가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좋은 계획을 가지고도 돈이 없어 실천에 옮기지 못하던 지방자치단체에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이 제도는 고향을 사랑하는 출향인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뜻을 모으는 것인 만큼 그저 현금을 나눠주는 지방소멸대응기금에 비해 의미가 남다르다. 다만 늘어난 재원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주민들의 참여와 유관기관의 일하는 방식에 일대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지역의 자각과 역량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농촌의 기반산업이 농업이던 시절에는 농업구조 개선을 통한 규모화와 기계화, 농산물 가격 보장이 농촌 활성화의 핵심 전략이었다. 하지만 도시화·산업화가 진전되고 경제사회가 다변화하면서 농촌에서도 다양한 일자리와 쾌적한 생활환경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존의 농업정책에 6차산업화와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귀농·귀촌 지원, 청년농업인 육성 등 농촌을 살리기 위한 새로운 대안을 추가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경북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 농도다. 사과산업을 특화하는 등 농업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높고 이 분야에 대한 예산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그러나 경지면적 0.5㏊ 미만과 판매액 1000만원 미만의 영세한 농가가 각기 58.6%, 56.7%나 되고 65세 이상 고령농가도 62.2%나 된다. 특히 농촌의 비농업부문이 취약해 농외소득 비중이 28%에 불과하다. 이는 전국 평균 40%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근대적인 농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전국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사과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경영주의 상당 부분이 영세 고령농이고 가공과 유통 기반이 취약해 해마다 수급불안이 반복되는 가운데 기후변화로 재배적지가 북상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성과 안동·청송을 연결하는 79번·914번 도로변의 사과농장과 가공·유통 등 관련 사업자를 연계하고, 고운사·최치원문학관·사촌마을·만휴정·주왕산 등 인근 관광자원과 결합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농촌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애플밸리 조성’의 구상이다. 사과공원과 와인공장·식당·직매장을 갖춘 일본 아오모리의 ‘애플로드’, 자전거로 사과농장을 방문하고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애플파이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애플파이 트레일’, 1800여개 와이너리와 음식·숙박 시설, 박물관과 공연장을 갖춰 미국 서부관광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캘리포니아의 ‘나파밸리’. 이들은 모두 주산지 농산물로 술과 음식을 만들고 도시민을 불러들이는 지역 활성화 사례다.

다행히 경북도의 지원으로 애플밸리의 밑그림은 그렸으나 대상 지역과 해당 분야가 워낙 넓고 다양한 주체가 관련돼 선뜻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살기에 급급한 지역농협과 개별농가는 각기 제 팔을 흔들며 고군분투하고, 지자체 역시 부서간 칸막이와 지역간 높은 장벽으로 소멸위기의 농촌문제 해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밸리의 꿈을 실현하는 데 있어 직면하는 여러 장애는 ‘농촌 살리기’라는 과제가 안고 있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 물론 다른 지역은 포도나 복분자, 혹은 또다른 특산물이 테마가 될 수도 있다. 핵심은 지역의 농업생산과 가공·유통을 연계하는 산업클러스터를 구축하고, 관광문화와 결합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며, 생활환경을 종합적으로 개선해 사람을 불러들이고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즉 행정구역과 사업부문을 초월한 밑그림을 바탕으로 연계 협력체계를 갖추고, 지역농협과 주민 그리고 지자체가 함께하는 밑으로부터의 접근방식이다.

농촌을 살리기 위한 제2, 제3의 애플밸리 꿈을 실현하려면 지역문제를 고민하며 책임 있게 대응하는 깨어 있는 주체가 필요하다. 춘추전국시대 강대국 사이에서 인구를 잃지 않고 살아남는 길을 묻는 등나라 문공에게 맹자는 ‘백성들과 함께 지키고, 죽음을 무릅쓰고 떠나지 않으면(與民守之 效死而民弗去·여민수지 효사이민불거) 해볼 만하다’라고 답했다.

결국 위기의 농촌을 살리는 길은 자조·자립 의지와 역량을 가진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현장과 외지 전문가를 연계한 ‘농촌살리기현장네트워크’라는 공부 모임인데, 뜻있는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한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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