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농어촌의 대중교통과 이동권 보장

입력 : 2021-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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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 수익성 악화 등 이유로

철도·버스 등 운행 급격히 줄어 각종 공공서비스 이용 ‘걸림돌’

운수업체간 이해 조정 어렵고

각 지자체는 재정적 부담 호소 제도 정비 등 근본적 해결책을

 

아내가 어머니와 함께 아침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다. ‘황반변성’이라고 농사짓느라 자외선에 지나치게 노출돼 생긴 병이라는데, 20여년째 두어달에 한번꼴로 서울에 있는 큰 안과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다. 마을 앞으로 중앙선 철도가 지나가지만 통과역이라 기차가 서지 않은 지 오래됐고, 버스 운행도 언제 멈출지 조마조마하다.

우리가 이곳에 온 후에도 한동안 군위·의성에서 단촌을 거쳐가는 서울행 시외버스는 동서울터미널행과 남부터미널행 두개 노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이 없다며 남부터미널행이 없어지더니 주 52시간 근로가 의무화되면서 동서울터미널행 버스도 운행횟수가 줄고, 요금도 1만7500원에서 2만5300원으로 인상됐다. 우리는 정류장 인근에 살고 있으니 아침버스를 탈 수 있지만 다른 마을주민들은 정류장까지 오는 것 자체가 큰일이다.

농촌은 마을이 흩어져 있는 데다 인구 감소와 자가용 차량 증가로 대중교통 수요가 줄고 있다. 하지만 행정은 물론 교육·의료·문화·여가시설 등 대부분 공공서비스 기능이 시청이나 군청 소재지에 있기 때문에 직접 운전을 하지 않는 어르신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2015년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3만4443개 행정리 중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 곳이 2439개(6.4%), 하루 1∼3회 운행하는 곳이 4390개(12.7%)나 된다. 농촌주민들의 대중교통에 대한 의존도는 높지만 운수업체의 경영 악화 등으로 이용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2017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농촌주민의 대중교통 이용 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버스 운행 횟수 부족(22.3%), 원하는 시간에 없는 버스(16.7%), 버스 운행시간 정보 부족(14.2%) 순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너무 비싼 요금, 거리가 너무 먼 버스정류장,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버스시간 등도 애로사항으로 지목됐다.

대중교통은 국민의 이동권 보장이란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는 ‘모든 국민은 대중교통 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국가 등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65세 이상 노인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지하철은 논외로 하더라도, 농어촌지역의 대중교통은 기다리던 버스가 어디쯤 오고, 몇분 후에 도착하는지 알 수 있는 서울이나 대도시의 교통 형편과는 너무 다르다.

농촌의 불편한 교통 여건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심지어 농촌을 떠나겠다고 결심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이에 2014년 농촌형 교통모델 시범사업이 시작됐으며, 지난해까지 82개 시·군에서 공공버스(60개 군 227대)를 운행하거나 100원 콜택시를 운영(75개 군 5232대)하고 있다. 정책수요자들의 만족도는 비교적 높지만 수혜 범위에서 벗어나거나 운행 빈도가 낮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재정 투자에 비해 안정적인 고객 확보가 어려워 운영 효율이 낮다는 지적도 있다.

농촌의 경우 운전이 힘든 어르신들은 병원에 가는 것뿐 아니라 장을 보거나 목욕과 이발 등 기본 생활조차 어려운 교통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버스공영제와 수요응답형 교통수단 확대가 필요하지만 지역 내 운수업체와 이해 조정이 쉽지 않고, 지역별로 따로 운영하는 교통체계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부담도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다. 가까이는 인근 중소도시·농촌중심지·마을로 연계되는 정주체계를 고려해 간선과 지선의 교통체계를 정비하고, 소형 버스 도입과 지역주민들의 참여 등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오지나 도서벽지 주민들이 대중교통 이용상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관련 제도와 정책을 정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단촌 생활 5년째, 30분 거리에 있는 경북 안동만 가도 아내가 좋아하는 공연이나 전시·영화 관람은 물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지만, 아내가 직접 운전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내가 함께 가지 않으면 꼼짝할 수 없다. 사정을 좀 아는 우리가 그러한데 외지에서 온 방문자나 관광객들은 오죽하랴? 농촌의 대중교통 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이야말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농교류와 귀농·귀촌을 촉진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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