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입춘에 불러보는 희망가

입력 : 2021-02-08 00:00 수정 : 2021-02-08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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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재난 탓 힘들었던 지난해 농촌은 인구 감소·고령화 가속

식량 생산·도시민 쉼터 제공 등 코로나 속 농업의 중요성 주목

새로운 각오로 다시 도약하길

 

며칠 전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봄의 문턱에 들어섰다. 고대 중국에서는 달의 움직임에 기초한 음력을 사용했는데 계절 변화와 맞지 않아서 보완한 것이 24절기이고, 그 첫번째 절기가 입춘이다. 입춘 하루 전날은 계절의 마지막이라는 뜻의 절분(節分)이라 하고, 그날 밤을 ‘해넘이’라 해서 사주명리학에서는 이날을 기점으로 간지(干支·띠)가 바뀐다고 한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는 날인 셈이다.

추위에 떨다가 입춘이 되면 동풍이 불어 언 땅이 녹고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은가? 사람들은 대문이나 문설주에 풍년과 소원을 기원하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는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대영(子孫萬代榮)’, 나라와 사회의 안녕을 비는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豊)’ 같은 글귀를 써 붙였다. 입춘첩은 어려움 속에서 새해를 맞는 사람들의 소망이자 다짐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마비되다시피 한 지난해는 정말 어려웠다. 학교와 직장이 문을 닫고, 젊은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해를 쫓아 국론이 분열되고 법과 질서의 원칙이 무너지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다. 냉해에 장마·태풍 같은 천재지변은 또 왜 그리 많았던지, 농사도 농촌도 어려운 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마스크를 하고 가족끼리도 경계해야 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국민들이 나라 걱정까지 해야 하는 꼴이었으니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리던 희망의 새봄인가! “응달에는 눈이 쌓여/ 할아버지의 흰머리만큼이나 근심스러운데/ 마른 가지는 겨울바람이 남아/ 할아버지의 손등만큼이나 앙상한데/ 입춘방을 붙이셨다”는 정군수 시인의 ‘입춘’이란 시가 가슴에 와닿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1년 농업전망에 따르면 올해 농업생산액은 지난해보다 1.9%, 농가소득은 1.5% 늘면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지만 지난해 증가폭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농가인구는 1.8% 감소하고, 65세 이상 농가인구 비중은 49.2%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인구 감소와 고령화, 이로 인한 노동력 부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정월은 맹춘이라 입춘, 우수 절후로다, 산중간학에 빙설은 남았으나 평교 광야에 운물이 변하도다.(중략) 산전수답을 상반하여 힘대로 하오리라. 일년 풍흉은 측량하지 못하여도 인력이 극진하면 천재는 면하리니 제각기 근면하여 게을리 굴지마라.”(정학유 ‘농가월령가’)

아직 날이 추운데도 이웃에서는 과일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비닐하우스에서는 고추 모종을 내느라 부지런을 떨어보지만 앞날을 알 수 없는 것이 농사다. 어디 그뿐인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식량 부족, 수급 불안은 여전한데 피부에 와닿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공익직불제를 도입한다고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그래서 무슨 공익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도 알 수 없다. 농촌이 무너져 내리는데 탄소중립이며 그린뉴딜 정책은 흡사 먼 나라 이야기 같다. 이래서야 봄이 온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새로움은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보고, 이것이 최선인지 곰곰이 따져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 스스로의 깨달음과 결심이 있어야 나쁜 관행을 물리치고 없던 복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코로나19로 농업·농촌이 얻은 것도 적지 않다. 국민들이 식량과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생각할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삶터와 쉼터로써 농촌이라는 저밀도 공간에 대한 가능성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문제는 어떻게든 새롭게 거듭나려는 우리들 각오와 일하는 방식에 달렸다. 처음 책력을 만든 오랜 옛날부터 춥고 긴 겨울, 어렵고 힘든 일이 한두번이었겠는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나 “입춘 추위에 김칫독 터진다”는 말이 있지만 겨울이 깊으면 봄이 머지않고, 매서운 추위를 겪으면서 충실한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아내가 빛바랜 입춘첩을 다시 쓰라고 성화지만 올해는 유승희 시인의 ‘입춘’이라는 시로 남은 추위를 견디고자 한다. “봄 앞에서 선 날/ 좋은 날만 있어라/ 행복한 날만 있어라/ 건강한 날만 있어라 (중략) 매서운 추위 걷히고/ 밝은 햇살 가득 드리운/ 따스함으로/ 뾰족이 얼굴 내미는 새순처럼/ 삶의 희망이 꿈틀거리는/ 그런 날들이었으면 싶어라” 정말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이 용기와 희망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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