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신축년에 생각하는 할머니와 소

입력 : 2021-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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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과 싸워 주인 구한 황소’ 등

어릴 적 할머니 들려주시던 재미난 소 이야기 문득 떠올라

농부의 오랜 벗 ‘소’의 해 맞아

의리·자기희생 가치 되새기고 한우산업도 새 미래 준비해야

 

날이 많이 춥다. 이런 날 할머니는 솔가지를 꺾어 마구의 바람구멍을 막고, 깔짚도 두둑하게 넣어주셨다. 작은 멍석처럼 짚으로 만든 ‘삼정’이라는 방한복도 입혔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얼마나 춥겠느냐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죽을 한통 퍼주면 늙은 소는 고맙다는 듯이 혀를 내밀고 큰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곤 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소에 대한 이야기다.

들일로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나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의 등에 업혀서 자랐다. 평생을 빠듯한 살림에 병든 남편을 모시고 나다니는 아들과 사느라 거친 농사일은 물론 땔나무까지 하며 묵묵히 집안을 건사하면서 인심을 잃지 않고 살아오신 할머니다. 며느리를 얻고 나서는 손주를 업고 마실도 다니곤 하셨는데 내가 칭얼거리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옛날 황소를 몰고 나무를 하러 갔던 사람이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났는데, 놀란 주인이 소의 코뚜레를 풀어줬더니 황소가 사타구니에 주인을 품고 호랑이와 싸웠다는 이야기도 이때 들은 것이다. 온순하고 성실해 시키는 대로 꾸벅꾸벅 일을 하는 소가 위험 앞에서 용감하게 호랑이와 맞서 주인을 보호했다는 말이 신기했다.

열서너살이나 되었을까. 그날도 잠실 마루에서 할머니와 함께 자는데, 한밤중에 소가 울더니 큰 벽돌이 모기장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바로 옆에 있던 오래된 담배건조실에 송아지가 딸린 큰 소를 매어뒀는데 장맛비로 건조실이 무너지면서 우리가 자던 마루를 덮친 것이다. 이 사고로 어린 송아지는 잃었지만 다행히 할머니와 나는 무사할 수 있었다. 소 덕분에 살았다고들 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겨울방학을 할머니와 보냈고, 소죽을 끓이는 따뜻한 아랫방에서 거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낮에 가시나무를 베느라 잔뜩 긴장했다가 밤이 돼 잠에 곯아떨어졌는데, 머리가 허연 노인이 “할머니가 저렇게 편찮으신데 무얼 하느냐”고 꾸지람을 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 깨어났더니 할머니가 윗목의 콩나물시루를 안고 계셔서 “왜 그러시냐”며 끌어당기니 굽었던 허리가 쭉 펴진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가까스로 벽에 기대 일어나 아버지께 알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 이웃이 피운 연탄가스가 쥐구멍을 타고 스며들어 중독이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가 손자 덕에 살았다고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 반대라고 믿었다.

대학에서 축산경영학을 공부한 나는 1970년대 후반 한우의 역할에 대해 졸업논문이라는 것을 쓰게 됐다. 할머니께 ‘일소의 특징을 표현할 속담이 없느냐’고 여쭸더니 ‘소는 새끼를 아홉을 낳아도 멍에를 벗을 수 없다’는 말을 해주셨다. 졸업 후 상급학교에 진학해 1980년대 초에는 직장을 가지게 됐고, 그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까지 세상 물정에 어두워 고지식하게 일만 하다보니 맛있는 것 사드리고, 좋은 구경시켜드리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그 후 한우는 빠르게 일소에서 고기소로 변했다. 1인당 연간 쇠고기 소비량은 1980년 2.6㎏에서 2019년에는 13㎏으로 증가했다. 비슷한 시기에 사육규모도 농가당 2마리에서 34마리로 늘고, 평균 출하체중도 358㎏에서 694㎏으로 커졌다. 1등급 출현율도 소도체 등급판정을 시작한 1993년의 10.7%에서 2019년에는 88.8%로 크게 늘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입 쇠고기보다 훨씬 비싼 가격인데도 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다. 관과 산학연이 협력해 사육을 규모화·전문화하고 맛과 영양을 차별화해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19년 기준 9만4000여농가에서 307만8000마리의 소를 사육한다. 그동안 쏠쏠한 재미를 봤지만 수입 쇠고기 소비가 늘고 가축분뇨와 축산냄새, 전염병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2013년 2월 중순 장관으로 지명받은 후 찾아온 축산업계 관계자들에게 동물복지를 생각하는 산지생태축산이 살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산림청과 농촌진흥청의 협조를 받아 정책을 다듬고 틈만 나면 현장에 나가 확인하고 독려했다. 신축년 정초에 할머니와 소를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는 인정이나 의리·자기희생과 같이 돈으로 가늠하기 힘든 가치도 있다는 점과, 이제껏 한우산업이 변화를 통해 오늘에 이른 것처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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