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지방소멸 위기

입력 : 2020-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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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군·구 절반 소멸위험

농가 고령화 늘고 청년농 적어 농업·농촌 공익적 기능도 위태

소멸 원인·정책 철저한 분석과

부족한 재정·전문인력 보충을 지역개발 종합계획도 수립해야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2014년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일본 총무성 대신이 쓴 ‘지방소멸’이란 제목의 보고서가 발간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 말이 주목받게 됐다.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의 도쿄 집중은 지방뿐 아니라 일본의 쇠퇴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일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총리실 산하에 위원회를 구성해 범부처적인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처지가 비슷한 우리나라도 마스다팀이 적용한 지방소멸지수를 계산하면 전국 228개 시·군·구의 절반에 가까운 105개가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농가의 경우 2019년 현재 20∼39세 젊은 경영주가 0.7%에 불과하고 경영주의 79.6%가 60세 이상이지만, 후계자가 있는 농가는 9.8%(2015 농업센서스)에 불과해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은 면 소재지 인근에 한때 150가구가 넘었던 제법 큰 마을이었다. 하지만 1970∼1980년대 산업화과정에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 아기 울음소리가 그친 지 오래다. 벌써 빈집이 늘어나고 기계가 들어가기 힘든 토지는 잡목이 우거진 채 방치돼 있다. 주민의 삶의 질은 고사하고 식량안보를 비롯해 농업과 농촌이 지닌 공익적 기능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위기 속에서 지역 산업과 공간 구조를 개편하고 공공서비스 공급체계를 정비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는 없을까?

내가 지역개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대초, 당시 내무부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위탁한 ‘농촌정주생활권개발 기본구상’이란 과제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최양부 박사의 지도로 연구원 20여명이 참여한 이 연구는 농촌 중심 도시와 배후 마을을 하나의 통합된 정주생활권으로 설정하고, 주민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으로 일상생활의 기본수요를 충족시키며, 보람과 긍지를 갖고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또한 주택, 상하수도, 전기·통신, 도로·교통, 의료, 교육과 인력개발, 농촌산업경제, 문화관광개발 등을 포함하는 부문별 사업계획과 재정투자계획을 망라한 새로운 지역개발방식을 제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주민의 개발수요와 지역 특성에 맞는 ‘밑으로부터의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기초해 부문간 연계투자를 할 수 있는 개발 및 행정운영 방식의 전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지역별 예산을 포괄 지원하겠다던 당국의 약속이 흐지부지되면서 하드웨어 중심의 면 단위 중심지 활성화사업으로 바뀌고, 기존의 마을개발 방식과 함께 오늘에 이르게 됐다.

오래전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지역개발이 여전히 마을이나 읍·면을 대상으로 중앙부처의 칸막이식 하드웨어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염려 때문이다. 지역의 인구 정착을 위해서는 특화산업을 육성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를 만들고, 교육·의료·문화 등 도시에 못지않은 생활환경과 공공서비스 공급체계를 갖춰야 한다. 대표적으로 ‘농어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 및 지역개발에 관한 특별법’을 기초로 관련 부처 사업을 망라한 ‘농어촌 삶의 질 향상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전국 어디에 살든 인간으로서 누릴 최소한의 서비스기준(National Minimum)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지역의 특성을 살린 계획도, 서비스 기준도 행동준거로 작동하지 않는다. 또 지방자치단체는 그때그때 사안별로 중앙부처의 사업을 따 오는 데 매달리는 형편이니, 주민의 개발수요를 반영하거나 부서간 연계협력은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최근 정부가 지방소멸을 걱정하며 고향사랑 기부제(고향세)를 도입하고 지역균형 뉴딜사업을 추진한다고 한다. 소멸위험지역지원법 제정도 검토 중이라니 다행이지만, 지방소멸의 원인과 그동안 추진해왔던 관련 정책과 지원방식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선거용 구호가 아니라 절박한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소멸위험지역에 부족한 정보와 재정, 전문인력을 보충해야 한다. 이를 기초로 지역의 여건과 개발수요를 반영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부문 및 지역간 연계협력과 구체적인 성과지표를 통해 사업을 관리하는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지난 수십년 동안 경험한 지역개발의 교훈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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