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김치 종주국의 위기와 기회

입력 : 202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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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단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 세계 5대 건강식품 선정되기도

중국, 염장채소 파오차이 제조법 국제 김치시장 기준 홍보 ‘시끌’

우리나라 김치산업 발전 위해 유통·소비 확대 여건 마련해야

 

11월22일은 김치의 영양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한 ‘김치의 날’이었다. 어지간한 외국인들까지 김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판에 새삼 김치의 날을 제정했다니 산중 사람의 좁은 생각에 그래서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김치박물관을 운영하는 광주광역시의 김치산업 실태를 두고 어느 지방 신문에 실린 기사의 ‘축제만 남고 산업은 없다’는 제목이 생각나서 하는 말이다.

“시월은 맹동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무우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탱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1843년 무렵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한 대목이다. 시장에서 사시사철 포장김치는 물론 싱싱한 채소를 살 수 있어 직접 김치를 담그는 가정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농가에서는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으레 해야 할 일이 김장이다.

우리도 며칠 전 배추김치와 백김치·물김치·알타리무김치·깍두기를 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아이들이 오지 못해 집사람이 씻고 소금에 절여서 양념해 버무렸다. 돼지고기 수육에 방금 버무린 김치를 얹어 먹으며 어머니도, 나도 맛있다는 칭찬에 아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맛있게 김장하여 겨울철에 대비하니 진수성찬 없어도 날마다 먹을 수 있네. 쓸쓸한 겨우살이 스스로 가엾으니 남은 해 감회가 깊음을 깨닫네.” 고려말 권근이 쓴 ‘김장(蓄菜)’이란 시구절에 600년 세월이 무색하다.

사전을 보면 ‘김치란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따위를 고춧가루·파·마늘 등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를 시킨 음식’으로 우리 식단에서 없어서는 안될 주요한 밑반찬 역할을 해왔다.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초기의 단순한 채소절임 형태에서 고려시대의 동치미와 나박김치로,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파·마늘 등 향신료를 가미한 양념김치로 발전해왔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고추가 들어오고 젓갈이 폭넓게 사용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김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지역별·계절별로 재료와 조리 방법이 워낙 다양해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어떤 이는 100종이 넘는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180여종이 있다고도 한다. 김치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이고, 김치를 담그고 나누며 소통하는 김장문화는 2013년 12월 유네스코(UNESCO)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치가 면역력 향상 등 다양한 기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최근 수출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중국 <환구시보>가 염장채소 ‘파오차이(泡菜)’ 제조법을 ISO(국제표준화기구)에 등록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김치산업이 국제 김치시장에서 기준’이 됐다는 점과 이를 김치 종주국인 ‘한국의 굴욕’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정부가 나서 파오차이는 ‘배추류·고추·무·당근 등을 소금에 절인 채소절임’으로 이 규격 기준은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2001년 김치에 대한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 규격을 정한 바 있지만 여기서 김치는 ‘배추에 고춧가루·마늘·생강·파·무 등으로 만들어진 혼합양념으로 버무려 발효시킨 제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장아찌나 동치미까지 포함하는 ‘염장발효 채소(과일)’로 정의한 파오차이에 대한 기준이 배추김치에 한정한 CODEX 기준보다 넓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식당이나 공공급식소에서 먹는 김치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다. 김치 종주국이라지만 수출보다 수입량이 5배나 많고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우리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란 이름으로 중국에 수출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

며칠 전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정부에 ‘국산 김치 소비 확대 운동’을 건의했다. 김치산업은 배추·무는 물론 고추·마늘 등 농산물 소비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회성 이벤트로 산업이 발전될 수는 없지만 산업 발전의 주체는 기업이고 소비자는 맛과 품질, 그리고 가격 수준에 따라 상품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민간부문이 김치를 건강식품이자 고급 문화상품으로 개발해서 유통하고 그 가치를 알고 소비하도록 기준을 확립하고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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