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코로나가 우리 농업·농촌 바꿀 수 있을까?

입력 : 202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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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장기화…식량안보 중요성↑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절실해져

늙고 지친 농업, 이젠 달라질 때

전문화된 농업경영체 육성 필요 주거·교육·의료 환경 등 개선도

 

집으로 가는 길목의 다리 밑에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옛날 동네 제사 지내던 마을숲이 있던 자리인데, 여기에 길이 나고 다리가 생기면서 그 밑에 작은 평상을 놓아 더위를 피하는 곳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전에는 어머니도 마을회관에 모여 종일 놀다 오시곤 했는데 회관이 문을 닫은 뒤 이리로 출근하신다. “집에 혼자 있으면 뭐 하느냐”며 혼자 전기 쓰기 싫다고 만류를 해도 굳이 나가시더니 날이 추워지면서 이제는 갈 곳이 없어졌다. 정작 어머니가 가실 곳이 없어지니 농촌에서도 코로나19 사태가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비대면 상황이 지속되면서 달라진 환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글로벌 관계망이 무너지고 외국에서 가져오던 에너지와 식량, 각종 원부자재를 들여오는 것은 물론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조차 어려워졌다. 얼마 전까지 쌀 생산과잉으로 생산을 줄여달라고 하던 상황이 식량안보를 걱정하는 목소리로 바뀌고,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절실해졌다. 국내에서 생산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맞는 말이지만 영세한 농지규모에 노후한 생산기반, 고령화된 농업경영체와 노동력으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산지수집상이나 도매시장 등 전통적인 유통망을 통해 거래되던 농산물이 비대면 거래로 바뀌면서 온라인 쇼핑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소통할 수 있는 원격교육과 원격의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농촌에는 초고속 통신망 등 디지털 인프라가 취약하고 매체 보급이나 역량이 뒤떨어진다. 게다가 서비스 품질에 비해 이용료가 비싸니 이를 이용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경험하면서 많은 도시민이 과거에 비해 식량안보의 가치와 농업농촌의 중요성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나서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상인을 지원하고 식량문제를 걱정하면서 온라인 유통 등 새로운 환경에 대비해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늘날 늙고 지친 우리 농업에 절실한 것은 전문화된 농업경영체를 육성하고 농지와 농업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술을 도입하는 일이다. 아울러 비대면 위주의 소비패턴과 거래관행 변화에 따라 온라인 유통망을 구축하고 그에 걸맞은 물류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쾌적한 농촌에서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부응해 농촌의 주거·교육·의료·문화 환경을 개선하고 귀농·귀촌자와 취약계층을 챙기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를 만든다고 한다. 농업에 기술을 접목해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일자리가 되고 농촌에서도 도시에 못지않은 교육·의료·문화·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복잡한 대도시에 살 필요가 있겠는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코로나19라는 큰 충격 앞에서 농업·농촌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 입으로는 농업이 생명산업이라 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5%, 사료를 제외하더라도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사 와야 한다.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소득의 65%에 미치지 못하고 농어민의 인터넷 이용률은 65.9%다.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69.8%로 장애인보다 낮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농업과 농촌이 맡은 바 역할을 다하고, 농촌이 보람 있는 일터이면서 쾌적한 삶터이자 쉼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도의 대설산에는 한고조(寒苦鳥)라는 새가 산다. 밤이 돼 암새가 춥다고 울면 수새가 내일은 집을 짓겠다고 각오하지만 정작 날이 밝으면 다 잊고 딴짓을 하다가 밤이 오면 다시 집을 짓겠다고 울면서 맹세한다고 한다.

듣기 좋은 소리나 이벤트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늙고 지친 농업과 농촌, 갈 곳 잃은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 많은 조직과 인력,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농업과 농촌도 정말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공공부문의 방만한 조직이라도 추스르고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할 텐데, 그게 가능할지 물어보는 것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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