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쓸쓸한 추석과 걱정되는 농촌의 고립

입력 : 202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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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발 비대면 명절로 귀성객 줄어 농촌은 외딴섬

농촌 주민 삶의 질 높아지도록 문화·레저 환경 확충하고

응원해주는 관계인구 늘려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마스크를 쓰고 서로 경계하며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지 8개월,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에 제약을 받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 결과 사회경제 전반에 걸친 위축은 물론 심신이 지치고 우울증과 스트레스·분노를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추석에는 온라인 성묘를 권장하는 방역대책으로 귀성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일년에 한두번 고향을 찾을까 말까 하던 자식들의 발길조차 뜸해지면서 쓸쓸한 추석을 보낸 것이다. 올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이러다 조상과 가족·전통문화를 존중하고 고향을 사랑하던 미풍양속까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추석 행사의 관행은 신라 3대 유리왕 때(32년) 가배(嘉俳)로 정형화됐는데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고 이웃과 어울려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한해 동안의 수고를 위로하는 전국 단위의 축제로 발전했다. 그 후 산업화와 도시화로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났지만 이날만은 만사를 제치고 귀성열차를 탔던 것이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의 전통이었다. <예기(禮記)>의 ‘여우도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머리를 둔다(首丘初心)’는 고사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사람으로서 근본을 잊지 말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해마다 3천만명이 넘는 국민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민족 대이동을 해왔으니 이것이 바로 부모·형제를 만나는 가족 사랑의 실천이자 지역사회 공동체 유지와 도농교류의 원동력이 됐던 것이다.

내가 집을 떠나 서울에서 추석을 보내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새벽부터 마장동터미널에 나와 길게 줄을 서 입석표라도 구하면 이제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 후 자동차를 구하고 나서도 교통체증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도 힘드는 줄 몰랐다. 대문 밖을 내다보며 기다리고 있을 가족이 보고 싶었고 친구들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추석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고향보다는 관광지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한다. 아마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나 도시 주변에 온 가족이 정착해서 굳이 고향을 찾아야 할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줄어드는 한편 자기들끼리 연휴를 보내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때문에 고향에 가지 않아도 된다니 고향 방문을 망설이던 사람들까지 한결 편하게 휴가를 보냈을지 모르겠다.

사실 우리 아이들도 서울의 병원에서 태어났다. 올해는 추석 전에 벌초며 성묘를 하고 갔지만 언제까지 그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조상이나 아버지의 고향에 관심과 애정을 기대한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번 추석에는 나를 팔아서 고향에 가지 말라’는 캠페인을 들으면 방역의 위중함을 새삼 느끼면서도 명절 귀성을 통해 근근이 이어오던 고향과 아이들의 연결고리가 끊어질까 두려웠다. 부모님이 사는 곳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농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농업부문의 든든한 고객이자 후원자가 될 수 있는데 그게 벽에 부딪힌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정주인구가 줄어 소멸 가능 지역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 관계인구마저 줄어들면 농촌은 외딴섬처럼 노인들만 쓸쓸하게 지낼 게 아닌가?

농촌의 고립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인구감소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기존의 주민들이 다양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하고, 농촌에 문화·레저 환경을 확충해야 한다.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던 공자의 말씀처럼 가까운 이웃끼리 재미있게 살아가면 그 모습을 보고 외지인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겠는가? 근본적으로는 농촌에 일자리를 만들고 청년들의 현지 정착과 귀농·귀촌을 촉진해 상주인구를 늘리는 것이 답이지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역의 산업과 사람, 생활환경 관련 정책을 서로 연계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주민들까지 협력해야 할 일이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지역과 인연을 가진 외지의 관계인구들을 챙기는 일이다. 형편상 같이 살거나 자주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조금은 덜 외롭지 않겠는가. 일본은 출향인이 특정 지역에 고향발전기금을 납부하면 상응하는 세제 감면과 특산물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면서 지방재정을 확충하고 관계인구를 늘리고 있다. 이 제도의 필요성을 말하자면 우리가 훨씬 더 절박하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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