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어떻게 살 것인가?

입력 : 2020-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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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의성 단촌으로 돌아온 후 얼마 안돼 냉엄한 현실 깨달아

어지럽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지난 일 탓 말고 남은 삶에 집중

농촌·젊은이들 응원하며 살고파

 

단촌으로 돌아와 퇴직자이자 귀향자가 당면하는 냉엄한 현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친지들은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도시로 떠나고 고향을 지키는 분들도 연세가 많이 들었다. 임진왜란 때 30년 만에 고향에 왔더니 ‘인망택폐우촌황(人亡宅廢又村荒)’이라던 서산대사의 시구처럼 옛날 집들은 허물어지고 마을은 황폐화됐다.

주위 어른들께 인사를 한다고 했지만 한두마디 하고 나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개중에는 뭐 하러 왔느냐고 묻고 경계하며 거리를 두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어쩌다 마을에 나무를 심고 꽃길을 가꿔보자는 운도 떼봤지만 귀담아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가족이나 친지들조차 오랫동안 떨어져 살다보니 서로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너무나 달라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연했다.

한달쯤 지났을까. 탄핵정국이 몰아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평생 공부나 하던 사람이 어쩌다 큰 책임을 맡아 가족도 친구도 다 잊고 밤낮없이 전국을 뛰어다니며 나라 살림을 맡았는데 갑자기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것이다. 엊그제까지 함께 국정을 논의하던 사람들이 맥없이 무너져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서도 해 뜨면 밭에 가서 일하고 해 지면 쓰러져 자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마당 한 곁에 작은 초막을 지어놓고 ‘사원제(思源齊)’라는 현판을 걸었지만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요즘 세상에 누가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며 물을 마실 것인가? 날이 추워지고 나서야 소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 소나무는 어디에 있는지, 답답한 날엔 인근 하회마을 부용대에 올라 얼어붙은 강물을 내려다보며 삭탈관직을 당하고 물러났던 류성룡 선생을 생각하곤 했다.

그는 낙향 후 <징비록>을 쓰는 짬짬이 아이들과 도토리를 줍고 어린 소나무를 옮겨 심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더 내려놓을 것도 없지만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원망까지도 잊어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경북 의성 단촌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꾼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새마을지도자이자 조합장을 지내며 더불어 잘사는 농촌을 위해 애쓰셨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농업경제학을 공부하고 평생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농정에 관한 연구를 했다. 남보다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동료들과 애써 노력한 결과 농공단지개발과 6차산업화, 지역종합개발, 정보화와 전자상거래, 향토음식과 식품산업, 술과 인삼·한약재, 농림분야 규제개혁에서는 나름 정책의 흐름을 바꾸는 성과도 올렸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떠한가?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가 갈수록 일할 사람은 줄고 버려진 농지는 늘어나는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노인요양원 같은 농촌에서 젊은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집에서 작은 개울을 두고 왼쪽으로는 빈집이 세채이고, 오른쪽으로는 독거노인이 두집 사는데 며칠 전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고 빈집이 한채 더 늘어났다. 굳이 정도전의 <답전부(答田夫)>를 빌리지 않더라도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농촌이 가난한 이유를 알아보러 간다더니 도대체 너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세월을 보냈느냐’고 꾸중을 하실 것만 같다.

퇴직자가 은퇴 이후 자신을 돌아보면 나름 성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저런 아쉬움을 가진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아 공부를 하고 한때 나라의 큰일을 맡아 뜻을 펼쳐본 적도 있지만 모두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돌아보니 왜 그리 회한이 남는지. 하지만 100세 인생이라니 아직 기회는 있다. 각금시이작비(覺今是而昨非)라, 지난 일을 탓해야 소용이 없고 지금이라도 알게 된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귀거래사>의 한 구절처럼 이제 남은 삶을 어떻게 갈무리할 것이냐가 숙제다.

사실 어지러운 세상에 어떻게 살고, 또 죽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남의 장단에 춤을 추면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저 좋은 글을 읽고 농촌의 밝은 미래와 젊은이들을 응원하며 나답게 살고 싶다. 요행히 공자가 말씀하신 ‘노인들이 편하게 생각하고(老者安之) 친구들이 믿어주며(朋友信之) 젊은이들이 그리워하며 따르는(少者懷之)’ 인생이 될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고향 집을 지키는 그런 어른으로 늙고 싶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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