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귀농·귀촌의 의미를 살리려면

입력 : 2020-09-07 00:00

지방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베이비부머 세대 귀촌 장려해야

범정부 차원 정책적 지원 필요

산업부문별 전문인력 양성하고 맞춤형 지원·사후관리 강화를


퇴임식 이후 우선 입을 옷가지와 책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온 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마을을 나섰다. 어두운 밤이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이다. 언제나 아버지가 지키고 계실 것 같던 농협 건물을 지나 커다란 은사시나무가 지키고 서 있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둘러본 뒤 한때는 왁자지껄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조용한 장터에 이르렀다. 언제 내걸었는지 모를 낡은 현수막에 ‘부모님 계시는 곳, 단촌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란 글귀가 눈에 띄었다. 1970년대 후반 대학원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나 사십여년간 떠돌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공직자로서 무거운 짐을 벗었다는 해방감에 코끝에 스치는 공기마저 달콤했다. 하지만 늙고 지친 농업·농촌의 현장에서 보낸 지난 4년의 경험은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드뇨’란 노랫말처럼 더이상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떻게 하면 소멸위기의 지방과 농촌을 살릴 수 있을까?

지난해 도시를 떠나 농촌지역으로 귀농·귀촌한 사람은 현행 통계상 32만9985가구에 46만1879명으로, 귀농자 3.5%, 귀어자 0.3%를 제외한 나머지는 귀촌자였다. 이들이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귀촌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으나, 인구감소로 일손을 구하기 어렵고 교육·의료·문화·교통 등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위축되는 농촌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내가 사는 단촌만 해도 처음 내려올 때는 2개였던 서울 가는 버스 노선이 1개로 줄었다. 크게 오른 요금에 비해 이용자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역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든다면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초등학교나 보건소, 마을버스도 더는 유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귀농·귀촌의 이유를 문의한 결과 대부분 자연환경이 좋아서, 도시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가족·친지와 가까운 곳에 살기 위해서, 본인이나 가족의 건강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중 귀농자의 경우 농업의 비전과 발전가능성을 보고 왔다는 응답자도 꽤 있었다. 이같은 응답은 귀농·귀촌이 은퇴한 후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는 도시민들에게는 혼잡한 도시를 떠나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려는 꿈을 실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과 농촌주민에게는 부족한 농업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들이 가진 기술·자본·경영능력·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할 수 있어 국토의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취임해 귀농·귀촌의 개념을 정비하고, 귀농 창업자금과 주택 구입자금 지원, 맞춤형 귀농·귀촌 교육 등 ‘귀농·귀촌 활성화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2015년에는 ‘귀농어·귀촌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러한 귀농·귀촌 정책과 자연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몇년째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유입되고 있다.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세종시와 10개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공공기관을 이전한 결과 2013∼2016년 수도권에서 지방으로의 순 이동이 겨우 5만800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마강래, 2019)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다. 그 연장선상에 아직 도시에서 서성거리는 베이비부머들을 내보내 도시의 과밀을 억제하고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은 없을까?

우선 기존의 농촌을 대상으로 한 농업 위주의 귀농·귀촌 정책을 지방중소도시까지 확대하고, 농업 이외의 다양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정보 제공과 교육 훈련, 창업 지원 등 귀향을 촉진할 수 있는 범정부 정책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 사실 호당 1.5㏊에 불과한 영세한 규모를 가지고도 공급과잉으로 고심하는 농정 현실과 기술집약형 스마트농업의 미래를 고려할 때 불특정 다수의 농민을 무작정 불러들이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닌 산업부문별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귀농·귀촌 지원정책과 추진체계를 정비하고,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유관 부서간 연계협력으로 정보 제공은 물론 교육 훈련, 빈집 알선 등 관련 사업 추진과정에서 맞춤형 지원과 체계적인 사후관리를 통해 정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귀농·귀촌을 단지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수단이 아니라 행복한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베이비부머의 귀향을 통해 도시 과밀을 해소하고 소멸위기인 지방과 농촌을 살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