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베이비부머의 귀향

입력 : 2020-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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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60년대 태어난 세대 다수가 고향 떠나

수도권 정착 과밀화·집값 상승 유발하기도

지방 시·군은 ‘소멸’ 위기 봉착 출향민 불러올 기반 마련 필요
 


나는 1955년 경북 의성 농사짓는 집 맏이로 태어난 1세대 베이비부머이다. 40여년 전에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을 구해 연구자생활을 하고 만년에는 국무위원으로 과분한 자리에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도 얻었다. 객지에서 지낸 고단한 타향살이였지만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기르며 바쁘게 살다가 노모가 계시는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같이 공부했던 초등학교 동기생 200여명 중 고향을 지킨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 친구도 비슷한 시기에 진학이나 일자리를 찾아 객지로 나갔다. 이제 노인이 된 그들이 만약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본인의 행복은 물론 수도권의 과밀로 인한 주택문제나 농촌의 과소화로 인한 소멸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국전쟁이 끝나고 조금씩 사회가 안정되자 출산율이 크게 높아졌다. 1955년부터 가족계획을 통해 산아제한을 시작한 1963년까지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이 기간에 태어난 약 730만명을 1세대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산업화가 진행된 1968~1974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2세대 베이비부머, 혹은 이를 합해 1955~1974년까지 20년간 태어난 1680만명을 베이비부머라고 하는 이도 있다. 어쨌든 이들은 부모 세대보다는 교육도 더 받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했을 뿐만 아니라 조국 근대화 과정에서 산업역군으로 경제적 여유도 가지게 됐다. 객지를 떠돌며 제대로 부모를 모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무감을 느끼며 살았고 정작 본인의 노후 준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대로,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믿고 살았지만 아직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1960년 무렵 우리나라는 국민의 72%(1799만5000명)가 농촌지역에 거주하고 62%(1455만9000명)가 농업에 종사했다. 1호당 가구원수는 5.99명이나 되는데 경지면적은 0.86㏊에 불과하니 좁은 농토에 많은 노동력이 매달려 봄이면 으레 식량이 떨어지는 보릿고개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일이 허다했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4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짧은 기간에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농업과 공업부문의 생산성 차이로 도농간 소득격차를 일으키고 급기야 농촌 인력의 대 탈출극을 연출하게 됐다. 이 무렵 수도권 베이비부머의 90%, 대도시 50~60%, 기타 중소도시와 농촌에서는 30% 정도만 현지에 정착하고 나머지는 이촌향도의 대열에 올랐는데 오늘날 베이비부머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그중 55%, 약 400만명이 지방 출신이라고 한다.

얼마 전 뉴스에서 서울 아파트의 평균가격이 10억원, 강남은 20억원이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부는 23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에서는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다. 이와는 달리 전국 228개 시·군·구 중 42.5%나 되는 97개 시·군이 인구 부족으로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 그동안 저출산 고령화 대책이며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마땅한 대책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베이비부머가 자기 집을 팔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주택에 대한 수요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지식과 경험, 기술과 자본이 지방소멸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대안이 제시된다. 지방은 첨단 과학 기술이 지배하는 도시에 비해 은퇴자들에게 적합한 사업 기회가 많을 뿐만 아니라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하지만 이사를 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삶터에서 집과 소일거리를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해 전부터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가는 귀농·귀촌자가 연간 50만여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베이비부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귀농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주자들이 새로운 지역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하면서 주민들과 어울려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수도권의 집을 팔고 낙후지역으로 이사할 경우 양도소득세를 경감하는 등 걸림돌을 제거하고, 인근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서 지방의 일자리와 교육·의료·문화 시설을 확충하며,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수도권의 과밀과 지방소멸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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