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필의 귀거래사] 새로 쓰는 1234

입력 : 2020-08-03 00:00 수정 : 2020-08-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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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퇴임 후 귀향한 지 4년 농업의 절박한 현실 깨달아

고향마을 이야기 전해

농민에겐 용기를 주고 힘든 사람들 위로하고파
 


2016년 9월5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퇴임 이후 바로 경북 의성군 단촌면으로 왔으니 다음달이면 만 4년이 된다. 1970년대말 집을 나서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들어가 객지생활을 시작한 지 40년 만의 귀향인 셈이다. “일을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해왔기 때문에 집사람도 특별히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퇴임식 후 바로 떠나자는 제안에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이 저녁에 꼭 가야겠느냐”라고 만류해 다음날 아침 출발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실 그만두기 얼마 전 대통령을 뵙고 하직인사를 드릴 때 고향에 가서 <이동필의 1234>를 새로 쓰겠노라고 말씀드렸다. ‘1234’는 장관 재직 시절 한달에 두어차례 농촌에 가서 세시간 이상 머물며 사람들과 소통하겠다는 당시 현장농정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새로운 1234’란 (1)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하루 (2)두어차례 밭에 나가 일하고, (3)삼시세끼 노모와 함께 밥 먹고, (4)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나 하며 살겠다는 뜻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동안 밀쳐뒀던 건강과 가정을 돌보면서 노모와 여생을 보내겠다는 각오다.

고향에는 어머니가 약간의 농토와 옛집을 지키고 계셔서 당장 거처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으나, 말로만 하던 농사는 여의치 않았고 오랜만의 농촌생활도 생소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친지들은 돌아가시거나 객지로 떠나고, 남아 있는 분들도 한두마디 이야기를 나누면 더 할 말이 없는 문화적 간격, 흡사 마을 전체가 요양원같이 늙고 지친 이웃, 매사를 정치논리로 해석하고 편 가르는 지방정치의 절벽 앞에서 못다 한 책임을 생각하며 유배 온 죄인처럼 해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들어와 쓰러져 자는 세월을 보낸 지 4년이 됐다.

그간 9917㎡(약 3000평)의 농사를 지으며 때맞춰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즐거움도 맛봤지만, 생산한 농산물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애환도 체험할 수 있었다. 입학생이 없어 애를 태우는 초등학교, 승객 부족으로 해마다 줄어드는 대중교통, 전기료를 아끼려 마을회관에 모여 지내는 노인들, 외식을 하거나 영화라도 보려면 인근 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불편한 이웃을 지켜보기도 했다. 어쩌다 농업경제학을 공부하고 농정연구로 평생을 보낸 사람으로서 늙고 지친 농업·농촌의 절박한 현실을 보면서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게 느껴진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농민신문사로부터 농촌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다. 그러잖아도 농업·농촌의 문제를 정리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어쩌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게을리해왔기 때문에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조심스럽기도 하다.

오늘날 농업·농촌이 당면한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국민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이 소멸하고 농촌이 붕괴한다는데도 그저 서울에 아파트를 더 많이 짓겠다든지, 한국판 뉴딜 정책에서 농업·농촌에 대한 배려가 부실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위정자나 정책입안자들이 농업·농촌 문제의 절박함과 잠재적 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다른 대안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밤낮없이 일하는데도 농촌이 가난한 이유를 공부하겠다며 집을 나갔던 조합장집 맏이가 돌아와 마을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해 농업인들이 용기를 얻고 농촌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사랑이 깊어진다면 늦었지만 책임의 한 부분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요즘은 보기 어렵지만 마을 어귀에 서 있던 당산나무 같은 칼럼을 써보고 싶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거나 향기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이 늙은 나무가 악귀를 물리치고 마을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이 농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려 길을 묻는 젊은이에게는 인생의 이정표가 되고,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는 나무 그늘 아래 쉬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글이 되면 좋겠다.


 




이동필씨는 제12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제61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2016년 농식품부 장관 퇴임 후 고향인 경북 의성으로 내려가 노모를 모시고 부인과 함께 농사짓고 있습니다. 귀농 4년차 촌부의 한 사람으로서 농촌 현장 애환과 보람, 마을이웃들과의 정겨운 이야기, 우리 농업이 처한 어려움 등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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