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가여워서 어쩌나

입력 : 2022-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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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올해가 임진왜란 430주년이어서 가덕도에 갔다. 지금은 부산시에 포함된 육지에 바짝 붙은 섬 가덕도는 고려시대부터 왜구들의 활동을 감시하던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을 본거지로 삼은 왜구의 활동이 잦았고, 결국 임진왜란 때는 그들 수군의 기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굴과 미역 등을 양식하며 살아가는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메고 어슬렁거리는 외지인에게 보내는 주변 시선이 곱지가 않다. 전과는 다른 경계심을 느낀다. 무엇 때문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그것밖에 없다. 가덕도 신공항이다.

경남권 공항은 현재 김해공항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며 신공항을 요구한 것은 꽤 된 일이다. 하지만 그 규모나 위치에 대해서는 지역 이권이 달려 있어 오랫동안 설왕설래하다가 건축기술 발달로 육지가 아닌 섬에, 그것도 바다에 공항을 짓기로 한 것이다. 정치권의 이해타산 때문에 엄청난 공사비를 지급하고 건설할 명분이 있느냐는 반론은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가덕도에는 공항이 들어서게 됐다. 그래서 원래 취재하려던 계획을 바꿔 가덕도 남쪽 외양포로 갔다. 이 마을 주변 산을 모두 깎아서 바다를 메운다는 복안이라 외양포 마을도 사라진다.

사실 국가가 주도하는 거대 토목공사로 땅을 잃고 집을 이전하는 사례는 지난 수십년 동안 숱하게 있어 외양포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다. 결론적으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토지는 물론이고 건물에 대한 보상이 일절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현재 외양포 마을과 일대 야산을 포함해 수만평이 국유지다. 더 정확히 하자면 국방부 소유다. 근처에 군기지도 없는데 이건 또 뭔 이야기일까?

1904년 일본제국의 군부는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하면서 외양포에 상륙해 무단으로 일대를 장악하고 주민을 내몰았다. 당시 외양포에는 주민 64가구가 살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과 협약을 이유로 군사기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고, 보상은 조선 정부가 해야 했다. 일본 해군은 외양포에 포대를 건설하는 동시에 주민들 집을 꼼꼼하게 조사해 조선 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조선은 돈이 없었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1907년 20가구에게 시세 5분의 1 가격으로 보상했다. 나머지 40여가구는 근처 대항항 등으로 뿔뿔이 흩어진 다음이었다. 1945년 해방 후 일본군이 쫓겨나고 빈 군부대 막사는 원래 외양포 마을주민과 가덕도의 집 없는 사람들이 제비뽑기를 통해 가구당 한칸을 점유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이 땅과 건물을 국유화했고 주민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외양포 마을을 걷다보니 밭에는 과실수가 촘촘하게 심겨 있다. 원래 일본군 막사라는 집들은 번듯한 외양을 뽐낸다. 그런데 이것이 모두 보상을 위한 위장일 뿐이다. 주민들에게 보상되는 것은 오직 농작물과 건물 수리비용뿐이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국밥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는 “뭐 나라님이 하시는 일인데, 닥치고 있어야지”라며 체념 섞인 혼잣말을 먼 하늘 보며 되뇐다.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는 이렇게 천명한다.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

이상엽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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