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거문고 줄을 풀고 다시 조율하라!

입력 : 2022-05-13 00:00

세상에 영원한 승자는 없어, 다시 시작하는 자만이 생존

농기구 해체 후 다시 조이듯 익숙한 과거 과감히 떨치고

새롭게 맘 다지는 5월 되길

 

<농가월령가> 5월은 보리타작과 누에고치 따기의 달이다. 춘궁기 허기를 달래고 여름 노동의 배를 채워줄 보리는 농부들에게 고마운 양식이었다. 보리밭에 타작할 터를 만들고 마주 서서 도리깨를 두드리는 농부 마음은 춘궁(春窮)의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5월은 그렇게 성큼 여름으로 들어서는 경장(更張)의 길목이다. 경장은 다시(更) 시작한다(張)는 뜻이다. 힘들었던 과거와 결별하고 힘을 내서 새롭게 시작하는 경장은 5월과 참 많이 닮았다. 타작이 끝난 보리로 밥을 갓 지어 상추에 한가득 싸서 입에 넣고 든든한 배로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봄의 끝자락, 여름의 길목은 그래서 경장의 계절이다.

경장은 원래 거문고 조율에 사용하는 단어다. 거문고 줄을 새롭게 고쳐서 팽팽하게 조율하는 것을 경장이라고 한다. 갑오경장(甲午更張)이 ‘1894년 갑오년에 일어난 새로운 개혁 운동’이란 뜻인 데서 알 수 있듯, 경장은 시대가 새로운 가치를 요구할 때마다 등장하는 중요한 용어다.

사회는 물론 나에게도 경장이 필요하다. 지나간 나의 업보를 털어버리고 마음을 조이고 닦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존재의 최소한의 의무다. 경장 없이는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선비를 사흘 못 보면 눈을 비비고 봐야 한다. 사흘은 선비에게 경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날마다 새로워지는 일신(日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선비라고 부른다.

경북도청 앞마당엔 공룡 뼈로 만든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새벽 인문학 강의를 위해 찾았던 도청 앞에서 만난 공룡은 구글 본사 앞에 세워져 있는 공룡 뼈를 연상하게 했다. 1억6000만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이 경장에 실패해 뼈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승자도 없다. 경장하는 자만 살아남는다. 청년들이 빠져나간 농촌이 경장에 실패하면 결국 뼈만 남게 될 것이다. 경쟁력을 잃은 농업이 경장을 소홀히 하면 나라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것이다. 경장 없이는 농업 미래도 없기 때문이다.

경장의 시작은 일단 버리는 것이다. 내가 해왔던 익숙한 것을 버리고 결별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거문고 줄을 다시 조이려면 줄을 푸는 해현(解弦)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자동차 바퀴를 바르게 조정하려면 일단 바퀴를 다 풀고 다시 조여야 하듯이 해현 없이는 경장도 없다.

해현과 경장은 변화의 중요한 과정이다. 거문고는 해현과 경장을 통해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율곡 선생은 구습(舊習)의 혁파 없이는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없다고 <격몽요결>에서 거듭 강조한다. 습관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나, 오늘을 아무 맛(味) 없이 맞이하는 나를 부수고 다시 조이는 혁구습(革舊習)의 결단이 해현경장(解弦更張)이다.

5월은 경장의 계절이다. 농기구를 해체하여 다시 조이고, 옛 마음을 갈아버리고 다시 다지는 계절이다. 전승불복 응형무궁(戰勝不復 應形無窮), 전쟁에서 한번 승리했다고 해서 계속 반복되지 않으니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한다는 <손자병법> 철학이다.

오늘의 승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나를 만나야 한다. 고정된 마음 없이 무심(無心)하게 무궁(無窮)히 변화하는 현실에 새로운 모습으로 응형(應形)하는 경장의 5월이 되기를 꿈꾼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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