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절친 대행

입력 : 2022-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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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2년 만에 사회활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 ‘자, 이제 친구를 좀 만나보자.’ 막상 이렇게 마음먹어도 딱히 바뀌는 건 없다. 사실 그동안도 진짜 친한 친구들은 온갖 규제를 피해 가면서, 모임금지 시간 지켜가면서,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만날 만큼 만나왔다. 다만 조금 덜 친했던, 가끔은 피하고 싶었던 지인과 만남은 사실 좀 뜸해졌을 것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어쩌면 친구의 등급을 매겼는지도 모른다.

조영주 작가의 단편소설 <절친 대행>은 친구 개념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재연은 30대가 되면서 편하게 전화 한통으로 만날 수 있는 절친한 친구가 사라졌다. 주말에 좁은 집 안에만 있는 것은 더 싫어서 동네 카페에서 혼자 눈치 보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그때 마침 독서모임에서 알고 지내던 명혜에게 우연히 연락이 오고, 그도 비슷한 처지임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주말마다 만나는 수다 친구가 된다.

그러던 가운데 명혜가 이상하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만나자는 말도 뜸하다. 알고보니 그에게 절친이 생긴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서도 잠시 티격태격하다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더 허전해진 재연은 카페 옆자리에 누군가 두고 간 명함에 시선이 간다. ‘당일 절친 대행 서비스, 저렴한 요금으로 성심성의껏 모십니다.’ 바로 검색해보니 잘나가는 최고경영자(CEO)인 최절친 대표가 만든 친구 대행 서비스 스타트업이다. 온갖 인터뷰 기사가 외로운 재연을 유혹한다.

결국 재연은 절친대행사를 방문한다. 추천인을 묻는 말에 혹시나 해서 명혜 이름을 말했더니, 역시나 명혜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명혜가 가장 높은 등급인 시간당 5만원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음을 듣고, 명혜가 만나는 친구를 요청하며 300만원을 결제한다. 대행 친구 선희를 처음 만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잘 차려입고, 약속 장소에 나간 재연은 의외의 모습의 선희를 보고 놀란다. 그러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선희와 재연, 그리고 명혜에게 펼쳐진다.

이 책을 읽고, 혹시 절친대행 서비스를 나만 몰랐나 싶어서 얼른 검색해봤다. 역시 아직 그런 서비스는 없다. 친구문화가 바뀐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이제 누군가를 전화 한통으로 바로 불러낸다는 것은 다소 불편한 일이 됐다. 가끔 오랜 친구의 전화를 받고 집 앞으로 나가기도 하지만 나의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친구를 불러내는 것은 분명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미안한 일이다.

조영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당신의 ‘혼자력’은 안녕하냐는 질문을 남긴다. 검색해보니 ‘혼자력’은 꽤 보편화한 말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혹시 ‘절친 대행’이라는 말에 솔깃했다면 아마도 당신은 외로운 건지도 모른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마지막 생존 검사 벤자민 페렌츠의 <101살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를 보면 친구를 사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나 자신과 사귀는 것이란다. 100세 시대, 내 평생 가장 절친한 친구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나의 절친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물어볼 차례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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