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양달을 보는 응달 토끼처럼

입력 : 2022-0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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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새해맞이 행사는 출입문의 낡은 창호지를 벅벅 뜯어내고 밀가루 풀 쑤어 새 한지를 바르는 것. 추운 날을 피해 따뜻하고 볕 좋은 날을 택한다. 밀가루 풀을 다 바르고 나니 문득 떠오른 고사성어. 송구영신(送舊迎新). 낡은 것을 보내고 나니 이제 순백으로 거듭난 나무의 영혼 같은 창호지에 은은한 새 볕이 스며드네.

설날 아침, 지난해 시집간 딸이 제 남편과 함께 새벽바람을 뚫고 달려왔다. 아내가 차린 떡국 밥상을 받기 전에 맞절한 후 식탁에 마주 앉았다. 숟가락을 들던 딸이 미소 띤 얼굴로 새해 덕담을 청한다.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니?”

“아빠, 그래도 한 말씀 해주셔야죠.”

“그래 알았다. 내가 얼마 전에 본 오래된 속담이나 들려주마. 혹시 너희도 알고 있을지 몰라. ‘양달 토끼는 굶어 죽어도 응달 토끼는 산다.’”

“처음 들어보네요.”

딸이 들어본 적이 없다기에 내가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풀어갔다. 겨울에 양지 쪽에서 따뜻하게 지내던 토끼는 앞산 응달의 눈만 보고 먹이를 구하지 않다가 굶어 죽지만, 응달의 토끼는 앞산 양달에서 눈 녹는 것을 보고 먹이를 찾아 나서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 “뜬금없이 왜 아비가 토끼 얘기를 하는지 아니? 시절이 하 수상하기 때문이란다. 아마도 아비가 살아온 시절 이상으로 너희가 살아야 할 시절은 어려울 거야. 괜히 겁주는 게 아니다. 이제 곧 식량위기마저 몰아닥치면 너희가 살아야 할 시절은 ‘누리는 삶’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견딤의 삶’이 될 거야.”

내 말귀를 금방 알아들은 딸이 맞장구를 쳤다. “아빠가 토끼 얘기를 들려주시는 까닭을 알겠어요. 응달의 처지에 살아도 양달을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이죠? 무엇보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가라는….”

“하하 그래, 아비 얘기는 여기서 끝!”

그렇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꽁꽁 얼어붙은 응달과도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각종 변이를 되풀이하면서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심각한 기후변화로 도무지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사람들은 내 편 네 편으로 싸우느라 바쁘다. 나라 밖은 숱한 분쟁으로 고통받는 이가 너무나 많고, 땅별에 드리운 생태적 위기는 점차 인류의 종말을 더욱 앞당길 듯 우리의 삶이 위태위태한 벼랑 앞에 선 것만 같으니.

우리가 직면한 이런 현실 앞에서 나도 우울해질 때가 많다. 매일 ‘마음공부’를 한다는 내가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이가 우울증으로 시달리겠는가.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정신과 병원에는 우울증 환자가 이전보다 훨씬 많이 찾아든다고.

오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 삶을 지배한다는 걸 처절히 경험하고 있다. 신을 믿는다는 종교인조차 보이지 않는 것의 힘을 폄하했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은 후엔 꼬리를 내리고 있다. 미신에 혹은 과학에 의지했던 마음이, 안 보이는 것의 무량한 힘에 굴복하거나 겸허해진 것.

결국 그 안 보이는 무량한 힘은 대자연의 힘이다. 옛 사람들이 속담으로 우리에게 일러두었지만,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양달을 바라보는 응달의 토끼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 양달을 바라보는 응달의 토끼 같은 지혜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고진하 (시인·잡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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