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실수하는 인간

입력 : 202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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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에는 나이 들면 실수가 줄어들 줄 알았다. 어쩐 일인지 실수는 점점 늘어만 간다. 단지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점은 실수에 연연해하거나 후회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작은 실수에도 자책했다. 나이가 드니 실수를 인정하는 것도, 그러려니 하는 심정으로 받아들이고 잊어버리는 것도 쉬워졌다. 반면 실수와 달리 오해를 받으면 예전보다 요즘 오히려 더 속상하고 억울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변명하고 싶어진다.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의 원작 소설이 담긴 정소현 작가의 동명 소설집에는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정야를 죽이고 말았다. 실수였다’라는 끔찍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의 인생에서 되풀이되는 실수와 오해를 다룬다. 정야는 사실 식물이다. 식물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주인공 석원은 여인숙에서 3년째 장기 투숙 중이다. 혼자 여인숙을 관리하는 주인 여자 일을 돕고, 한밤중에 사무실을 지켜주며 공짜로 방을 쓴다. 석원은 정원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사다리를 잡아주다가 실수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고는 집을 나와 여인숙으로 숨어든다.

여인숙에서 기사를 검색해봐도 아버지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삶을 살며 그는 실수투성이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살았다. 새어머니가 들어오자 한동안 잠잠하던 아버지는 새어머니도 때렸다. 새로 태어난 여동생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다. 아버지는 석원이 실수로 태어났다고 입버릇처럼 외쳤고, 아들에게 폭력을 감내하게 했다. 그런 아비는 결국 아들의 실수로 생을 마감했다.

석원은 실수로 점철된 자기 인생을 소설로 써보려 하지만 아버지를 죽였다는 한 문장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토막 난 시체로 발견된 새어머니의 살해 용의자로 지명수배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은 바로 여동생. 여인숙에 지명수배 전단이 붙자 석원은 주인 여자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결백을 주장한다. 외로운 주인 여자는 석원이 여인숙을 떠날까봐 석원을 숨겨주기로 한다. 자신의 실패를 실수라며 덮고, 오해에 대해 변명하려던 석원의 행동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이어진다.

대선이 다가와서일까, 요즘 우리는 뉴스를 통해 다른 사람의 실수와 오해를 끊임없이 목격한다. 경쟁관계에 있는 그들은 상대방의 실수를 극대화하고, 자신이 받는 오해에 대해선 변명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실패를 실수라며 덮고, 실수조차 오해라고 우긴다. 실수와 실패, 오해가 맞물리면서 사실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모든 인간은 실수하지만 실패하진 않는다. 누군가는 실수를 발판 삼아 성숙해지고, 다른 누군가는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다 실패한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오해를 발판 삼아 진정성을 인정받고, 다른 누군가는 오해를 덮으려 하다 거짓말쟁이가 된다.

이제 무엇이 실수인지, 오해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들의 오해를 어디까지 오해로 여겨야 할까. 그들의 실수를 어디까지 눈감을 수 있을까. 실수와 오해에 지쳐가는 요즘엔 그들이 더이상 실수하지 않기를, 이제는 모든 오해가 깨끗하게 풀리기를 기대한다. 욕심일까? 어쨌든 우리는 지금부터 그 모습을 100일간 지켜봐야 하고, 그 이후에는 또 5년을 견뎌야 한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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