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자연의 이자로만 살아가라

입력 : 2021-07-23 00:00

01010101401.20210723.900027824.05.jpg

도낏자루의 으뜸은 물푸레나무.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등산도 할 겸 물푸레나무를 찾아 나섰다. 소나기라도 내리면 방이 눅눅해지기 때문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무를 쪼개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철물점에서 사다 끼운 중국산 도낏자루가 부러져버렸다. 물푸레나무라면 이렇게 쉽게 부러지진 않았으리라.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는 뜻의 이름도 아름다운 물푸레나무. 곁에 서면 내 몸도 푸르게 물들일 것 같은 물푸레나무. 목질이 낭창낭창하고 단단한 물푸레나무는 옛 농부들이 도리깨나 소 코뚜레를 만들 때 사용했고,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 산간에서는 설피의 재료로도 각광받았다.

물푸레나무를 찾으려 오른 산은 내가 사는 마을에 있는 명봉산. 목적이 분명한 산행이기에 계속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한시간쯤 구슬땀을 흘리며 산을 올랐지만 물푸레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소나무와 참나무 외에 다른 나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에는 아주 흔하던, 빗자루를 매던 싸리나무, 약재로 활용되는 생강나무나 인동 같은 나무들도 보이지 않았다. 산 주인이 소나무와 참나무를 키우기 위해 다른 나무들을 모두 잡목으로 취급해 벌목해버린 것 같았다.

‘오늘 도낏자루를 구하긴 글렸구나!’ 가파른 산비탈에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고르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저만치 바위 절벽 옆에 흰색 얼룩무늬의 나뭇가지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바로 내가 찾던 물푸레나무였다. 벌목하던 이들이 기계톱을 들고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있어 살아남은 듯싶었다. 나는 톱을 들고 조심조심 다가가 바위에 몸을 기대고 수령이 100년은 됨 직한 물푸레나무의 가지 하나를 잘랐다. ‘고마워, 딱 한가닥만 잘라 갈게!’

산행의 목적을 이루고 내려오는 길. 흥에 겨워 휘파람까지 불며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오는 길. 걸음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왜 산주들은 소나무와 참나무만 남겨두고 다른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렸을까. 소나무와 참나무에서 나는 값비싼 버섯을 얻기 위해? 젊은 시절 강원 강릉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곳 사람들은 송이를 얻기 위해 다른 나무를 다 베어버리고 소나무만 키웠다. 그런데 소나무는 인화력이 강해 산에 불이 나면 삽시간에 불타 시커먼 민둥산이 돼버리고 말더라.

이제 우리는 좀더 멀리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구의 생물 다양성은 우리의 생물학적 재산이자 소중한 자본이 아닌가. 은행 잔고를 늘리기 위해 한 식물 종만 살리고 다른 종을 모조리 말살한다면 우리 인간의 미래도 단축되고 말지 않겠는가.

소설가 박경리는 인간이란 모름지기 ‘자연의 이자’로만 삶을 꾸려가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니까 자연이라는 ‘원금’을 아껴야 한다는 것. 오늘날 전세계가 기후 재앙에 직면해 고통받는 것은 자연의 이자로만 삶을 꾸려가지 않고, 자연의 원금을 펑펑 낭비한 탓이 아닐까.

이 세상에서 식물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인간 삶의 진정한 모태는 이 대지를 뒤덮고 있는 녹색식물. 녹색식물이 없다면 우리는 숨쉬지도, 먹지도 못할 것이다. 자연농을 하는 나는 텃밭을 가꾸다가 낯선 식물을 발견하면 뽑지 않고 그냥 자라도록 둔다. 어쩌면 식물도감에도 없을지 모를 그 낯선 식물이 나의 무지 때문에 지구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고진하 (시인·잡초연구가)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