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소비노동조합

입력 : 2021-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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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소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모임이 줄어들고 단체소비가 위축되자 문을 닫는 식당이 속출했다. 생활필수품과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는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재화의 매출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결국 정부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초강수를 또다시 고민하고 있다.

과연 소비는 미덕일까? 현대인에게 소비는 삶을 위한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행위로 그치지 않는다. 소비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정체성을 확인하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는 수단이다. 소비에 대한 현대인의 지나친 집착은 병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인간의 기본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비가 미덕과 악덕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가 됐다.

김강 작가의 소설집 <소비노동조합>에 실린 표제작 ‘소비노동조합’은 미래사회를 예고하는 단편소설이다. 사채업자인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원칙에 따라 사채업을 운영한다. 직업이 없는 사람에겐 돈을 빌려주지 않고,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 반드시 확인한다. 3년 이상 장기 거래는 절대 하지 않고, 돈을 빌려 간 사람의 월급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은 2069년, 기본소득제도가 30년째 시행 중이다. 성인이 되면 정부로부터 최소한의 생활비를 매월 지원받는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온 국민이 행복한 시대다. 기본소득에는 최저생계비에 문화·여가를 향유하는 비용까지 포함돼 있다.

주인공 사채업자는 매월 입금되는 이 기본소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다. 정부가 지급하는 돈이니만큼 상환이 밀릴 염려는 전혀 없다. 게다가 채무자는 직업이 있으니 성실하다는 뜻이고, 사용처를 사전에 확인하니 돈이 나쁜 곳에 쓰일 염려도 없다. 임금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채무자는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받으면서 빚을 갚을 수 있다. 3년을 기준으로 대출금 액수를 정하면 조기에 원금 회수가 가능하고, 이에 따라 60% 수익률 달성도 어렵지 않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23세 청년 채무자의 기본소득이 두달째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행정상 오류가 아니면 채무자가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사채업자는 기자를 사칭해 청년 채무자의 거처를 알아낸다. 아니나 다를까 구치소에 들어갔다. ‘전국소비노동조합’을 만든 채무자는 기본소득 현실화를 주장하며 장관 집무실을 점거해 농성을 벌이다 잡혔다.

구치소를 찾아가 만난 채무자의 항변은 이렇다. 2069년에는 돈을 쓰는 것이 노동이고, 소비라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월급 인상을 위해 노조가 투쟁하듯 소비노동자들은 기본소득 인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소비라는 노동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기본소득을 월급으로 받으면서 소비와 생산 중심의 사회에서 신성한 노동을 하고 있단다.

기본소득은 다가오는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것이다. 생산사회에서 소비사회로 바뀐 지는 이미 한참 됐다. 소비가 미덕과 악덕을 넘어서 노동이 될까? 그렇다면 정말 소비를 위한 기본소득은 국민의 월급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답을 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당장 대선에서 어떤 논쟁이 펼쳐질지도 궁금하지만 부디 내가 103세까지 살아서 2069년에 이 소설이 현실이 되는지도 직접 지켜보고 싶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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