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별 모양의 얼룩

입력 : 2021-05-14 00:00

01010101801.20210514.900022332.05.jpg

나의 인생 첫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내가 다섯살 때다. 그날 아침, 아빠가 전화받은 후 엄마가 쓰러졌다. 엄마의 미장원이 있는 건물에서 불이 났다. 엄마는 미장원에서 일하는 누나들과 야유회를 가려고 도시락을 싸고 있었고, 미장원 누나 중 몇명은 그날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뉴스에서도 그 사건을 다뤘다. 그때의 흑백화면은 적어도 내 기억 속 첫 장면으로 남아 있다.

내게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또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그 집 유리창을 깬 일, 열세살 때 돌아가신 엄마의 관이 아파트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며 흔들리던 장면, 미국 유학 중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마지막 전화를 받던 순간. 내게는 이 기억들이 마치 얼룩처럼 남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갖고 있다.

하성란 작가의 단편소설 <별 모양의 얼룩>은 아이의 유치원 사진을 들여다보는 ‘엄마’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너무도 평범한 아이는 그 어떤 사진 속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겨우 단체사진 속 옆 얼굴을 찾아냈지만 확대할수록 아이의 얼굴은 더욱 흐릿해진다. 덕수궁 앞, ‘엄마’가 샛별유치원이라고 쓰인 관광버스 앞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른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이 모습이 담긴 사진 액자를 들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떠나보낸 사고 현장으로 간다. 저마다 슬픔의 농도는 다르지만 눈물과 후회는 여전하다. 바닷가에서 사진을 부여잡고 뒹굴며 오열하는 엄마도 있다.

길지 않은 추도식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어느 가게 앞에 잠시 차를 세우고 목을 축일 때 주인장은 때늦은 목격담을 말한다. 불기둥이 치솟기 전, 노란 옷을 입은 낯선 아이를 봤다고, 어두워 얼굴은 못 봤지만 그 아이의 가슴에는 별 모양의 브로치가 있었다고.

‘엄마’는 그날 아침 아이에게 노란 원복을 입히며 발견한 가슴팍에 있는 별 모양의 얼룩이 떠오른다.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얼룩이 묻은 옷을 입혀 아이를 수련회에 보내야 했던 ‘엄마’의 후회가 가슴 시리게 밀려온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증언은 귓가에 쟁쟁하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딘가에 살아 있을 법한 아이의 흔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주인장이 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이 들고, 아이의 상태는 사망에서 실종으로 바뀐다.

엄마는 되새긴다. 아이는 지금도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앞으로도 수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별 모양의 얼룩은 아이의 옷에도 엄마의 마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잊힐 만하면 터지는 대형 참사는 온 국민의 마음에 무수한 얼룩을 남겼다. 그때마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하지만 그 기억들은 곧 희미해진다. 씨랜드 참사도, 대구지하철 폭발 사고도, 세월호 참사도 언제였는지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유가족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한 얼룩이다.

어떻게 하면 원인을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문인들과 사회학자들이 세월호 참사의 기억을 모아 쓴 책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말하듯 우리는 이제 선량하게만 살다 떠나갈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야 한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기억하겠다는 약속도, 얼룩을 완전히 지우진 못한다. 가정의 달 5월은, 어쩌면 아이를 잃은 이들에게는 가장 잔인한 달이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