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귀여움의 정체

입력 : 2021-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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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75세 할머니가 세상을 사로잡았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탄 배우 윤여정씨가 그 주인공이다.

영화 <미나리>에서 미국에 이민 간 딸을 도와주러 간 할머니 역을 맡은 그는 오스카(아카데미 시상식 트로피를 일컫는 말)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30개가 넘는 상을 휩쓸었다. 우리 영화 역사를 다시 쓰는 가슴 벅찬 사건이다. 각국 영화평론가와 대중이 그의 연기에 매혹된 것은 물론이고 재치 넘치고 당당한 수상 소감에 “너무 귀엽다”란 말을 연발했다. 70대 어르신이 ‘귀엽다’란 찬사(?)를 받는 경우는 참 드문 일이다.

최근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인 장항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는 ‘귀여움’이다. 50대임에도 소년 같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드라마 작가인 아내 김은희씨가 요즘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다고 자랑한다. 중년의 중후함이나 엄숙함, 혹은 가장의 비장한 무게감은 찾을 수 없다. 대신 한없이 가볍지만 소풍 가는 초등학생처럼 즐거워하는 장 감독의 말과 표정을 보면서 ‘내 이상형이 귀여운 남자로 바뀔 줄이야’ ‘구김살 없는 저런 성격의 사위도 괜찮을 듯’ 등의 댓글이 이어진다.

공중파 방송에서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진 후 재능 있는 개그맨들이 유튜브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새 돌파구를 찾고 있다. 그들이 선사하는 웃음도 공중파 방송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 가운데 최근 가장 뜨거운 관심과 화제를 모으는 개그맨은 김해준씨다.

그는 본명보다 ‘최준’이란 부캐(부캐릭터의 줄임말)로 더 유명하다. 카페 사장 콘셉트인 최준은 느끼한 표정과 비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만나는 여성에게 “귀여워”를 연발한다. 아름답다, 우아하다가 아니라 ‘귀여워’라는 말에 여성들은 중독됐다. 그리고 팬들의 열렬한 환호 덕분에 최준은 각종 공중파 방송에 1순위 초대 손님으로 활약 중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귀엽다’의 뜻은 ‘예쁘고 곱거나 또는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귀엽다는 말에는 사전적 의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위에 소개한 이들만이 아니라 30년 넘는 기자 생활을 통해 만난 ‘귀여운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가식이 없음’ ‘자존감이 높음’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과 재미를 찾음’ 등이 있다. 그런 특성과 덕목은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킨다. 마치 천진한 아기들의 표정을 볼 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처럼 귀여운 사람은 언제고 다시 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왜 2021년에 남녀노소 상관없이 ‘귀여움’이 최고의 찬사로 떠오른 것일까. 사랑받는 사람을 수식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된 것일까. 그것은 주변에 귀여움과 거리가 먼 사람이 너무도 많기 때문은 아닐까. 입으로는 애국 애족이니, 정의니 부르짖으면서 정작 현실에선 편싸움만 하는 정치인들, 여전히 갑질만을 일삼는 사회의 갑들에 염증을 느껴서가 아닐까.

어쩌면 귀여움의 반대말은 ‘꼰대’ 등일지도 모른다. 나이 들어 ‘꼰대’ ‘꼴통’ 등으로 불리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귀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힘들 것도 없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가식 없이 인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볼 것, 작은 기쁨에도 미소를 짓고 그 미소를 남들과 나눌 것, 이것만 기억해도 충분히 귀여워질 수 있다.

유인경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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