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야생초, 신들의 음식

입력 : 2021-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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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잰걸음으로 왔다가 잰걸음으로 갈 모양이다. 봄의 전령인 꽃들도 거의 한꺼번에 피었다. 평소 굼뜬 나도 봄의 잰걸음을 좇아 잰걸음으로 들판을 쏘다녔다. 뒷짐 지고 걷는 한가로운 산책이 아니었다. 어깨에 멘 댕댕이바구니를 들풀들로 채워야 했으니까.

그렇게 아침부터 들풀을 뜯어 돌아오고 있었다. 남들은 잡초라 여기지만 우리 가족에겐 소중한 먹거리인 들풀들. 마을 둘레길을 돌며 논밭 두렁에서 채취한 것. 당산나무를 지나 마을로 막 들어서는데, 텃밭에 고추 모를 내던 옆집에 사는 충주댁과 마주쳤다. “어딜 다녀오셔유?” 난 어깨에 멘 댕댕이바구니를 기울여 내가 뜯은 걸 보여주었다. 우리 가족이 잡초 먹는 걸 아는 충주댁이 깔깔대고 웃었다. “추수하신 거네유?” “하하, 그런가요?”

추수! 그렇다. 농부들은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추수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제철에 나는 풀들을 뜯어야 하기에 이른 봄부터 추수를 한다. 우리 집 부지깽이도 바쁘다며 뛰어다닌다. 그날 내가 채취한 들풀은 개망초·민들레·광대나물·제비꽃·별꽃·쑥·꽃마리 등등. 때를 놓치면 쇠어 먹지 못하는 풀들. 하늘이 지어준 농산물을 고마움으로 거두기만 한 것이다.

우리 가족이 야생초를 먹은 건 벌써 10년이 넘는다. 야생초를 공부하며 먹어보니, 농부들이 키우는 채소들만큼 영양가와 약성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척박한 땅에 자란 식물일수록 향도 진하고 치유력도 높다. 야생의 풀들에는 파이토케미컬(식물성 화학물질)도 풍부하다.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이 식물성 천연물질은 노화 예방, 면역력 강화, 항암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립의 삶을 추구하는 우리 가족에게 돈 한푼 지불하지 않고 뜯어먹을 수 있는 야생초는 경제적으로도 큰 보탬이 된다. 야생초를 먹거리와 약으로 사용하면서 좋은 기억도 많다. 식물에서 약을 구하던 원주민들은, 아픈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치유받을 식물의 씨앗을 그가 사는 곳으로 날려 보낸다고 했다. 이런 신비를 우리 가족은 여러번 체험했다. 집이 좀 습해 식구들의 무릎관절에 병이 생기자 습해서 생긴 무릎 병을 치료하는 쇠무릎(牛膝·우슬)이 뒤란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더라.

피터 톰킨스는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에서 “식물들은 그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진 않으며, 생명 군락을 창조하고 유지한다. 나아가 모든 생명체들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제공해주며, 병든 생물들을 치유해주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본의 노예로 살면서 우리는 식물을 이용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만 여기는 나쁜 습성에 길들여졌다. 식물을 삶의 스승이자 치유사로 여긴 인디언들은 식물이 그들의 자손인 인류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기 때문에, 인간 질병에 필요한 치료제를 제공해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에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지 않은가. 인간을 식물의 자손으로 생각하면 자연과의 가족적인 유대감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야생초를 뜯어 먹으면서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식물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며, 오히려 우리가 식물의 사랑을 받는 후예라는 것. 고대 그리스인들은 식물을 일컬어 ‘생명을 주는 자’라는 의미의 암브로시아(신들의 음식)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늘 나에게 생명의 에너지를 선사해주는 들판의 흔한 들풀들 또한 암브로시아가 아닐까. 내가 야생초 요리를 먹고 영육이 건강해지면 신들도 기뻐하지 않겠는가.

고진하 (시인·잡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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