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떠오르지 않는 기억은 역사가 못 된다

입력 : 2021-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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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거리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워낙 좋아진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 때문일 것이다. 번거로움 없이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간편함에 누구든 매료될 만하다. 누르기만 하면 실수할 여지도 없이 사진이 찍히고, 선명한 화질은 기본이다. 3∼5개나 되는 각기 다른 화각의 렌즈는 고급 기종 카메라만이 낼 수 있던 다양한 효과까지 이끌어낸다. 게다가 스마트폰 사진 보정 애플리케이션(앱)을 쓰면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특수효과도 적용할 수 있다. 당연하면서도 놀랍다. 스마트폰 하나가 바꿔놓은 변화가 이토록 어마어마하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많은 사진을 찍어댄다. 덕분에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사진으로 쌓인다. 어디에 갔는지, 누구를 만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찰나에 사라지는 봄날의 화려한 벚꽃까지 기록으로 남게 된 건 사진 덕분이다.

게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지난 과거의 행적을 끄집어내 다시 보여준다. 온라인 공간에 저장된 사진들이 한 사람의 삶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시대를 우리는 산다.

사진에 살을 붙이면 이야기가 된다. 사진으로 남은 일상의 단편들이 소중한 기록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록이 쌓이면 역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충실한 일상의 기록자가 될 일이다.

팁을 몇가지 소개한다. 찍어둔 사진은 주기적으로 백업하고 분류해 정리한다. 제목을 다는 것은 필수다. 쓸모 있는 기록의 재료로 삼기 위해서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인화하거나 출력해서 실물 사진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 모니터 속 사진보다 손에 든 사진 한장이 순간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떠올려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억들이 선명해지면 삶이 충만해진다. 과거를 떠올렸을 때 아무런 모습이 떠오르지 않고 말로 옮길 수도 없다면 그건 역사가 되지 못한다. 실물 사진은 강렬한 기억으로 바뀌기에 소중하다.

문제는 우리가 사진을 인화해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메모리카드에서 머물며 화면만을 떠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일에만 몰두할 뿐 이를 실물 사진으로 바꾸지 않는다. 디지털 사진도 당연히 출력하고 인화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쉽게 말이다. 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사진 활용법은 늘 이렇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편리하되 기억의 강도와 지속시간은 매우 짧다. 메모리카드에 사진이 쌓이는 수만큼 기억은 외려 더 희미해진다. 대단한 사건도 사진첩 속에 파묻힌다. 그렇다면 사진은 찍어두나 마나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걸 비로소 실감한다. 최근 인화되지 않은 사진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손에 들고 다니는 사진,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의 소중함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비닐 레코드 LP가 부활하듯 인화된 사진이 바로 나오는 카메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기가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의 선택이란 점이 재미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편리함에 묻혀 정작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살았다는 자각의 발동이다. 첨단이 익숙함을 이길 순 없다. 첨단 디지털도 익숙한 아날로그와 접점을 찾을 때 완결된다는 사실을 최근 실감한다.
 

윤광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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