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날 때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다

입력 : 2021-04-02 00:00

01010101401.20210402.900018229.05.jpg


경남 창녕군 장마면에 꽃망울처럼 봉긋봉긋 나지막이 솟아오른 산들이 아늑히 논과 밭을 에워싼 마을이 있다. 마을 뒤편 저수지 둑에 올라서도 딱히 눈에 띌 만한 높은 산이 없을 만큼 전반적으로 지대가 낮은 곳이다. 동서남북 분간이 안될 정도로.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솔바람 소리, 어느 산에선가 들리는 전기톱 소리, 까치나 닭 울음소리만 간혹 들릴 뿐, 그 소리마저 멈추면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난 직후의 정적이 이 마을에도 잠시 스며든다.

마을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한참 서 있어도 조금 전 소리만 도돌이표처럼 반복해서 들리고 여전히 인기척이 없다. 무작정 마을회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 여든살쯤 돼 보이는 할머니 두분이 화단에 꽃을 심고 있었다. 이장이 면사무소에서 얻어온 꽃을 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보여줄 게 있다며 마을회관 안에서 책 한권을 가지고 나온다. ‘미구마을 사람들’이라고 적힌 책이다.

집집이 사진 한장, 사연 하나씩 실은 책이었다. 중간쯤 넘기는데 할머니 한분이 “저기 소 몰고 서 있는 이가 자신”이라며 사진을 가리킨다. 할머니의 사십대 시절 사진이다. “자식이 여덟이야. 소 한마리 키워서 새끼 낳으면 팔고 또 팔고, 영감은 남의 집 일을 해주고 그러면서 그럭저럭 다 키워냈어.” “왜 그렇게 자식을 많이 두셨어요?” “우리 영감이 2대 독자라 아들을 낳으려고 그랬지. 그래서 마지막에 연거푸 아들 둘을 봤어. 그런데 내가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 게 큰딸부터 딸들은 내리 전부 중학교만 나왔어. 이후에는 부산 공장에 다니면서 야간학교를 나왔지. 큰아들만 대학교 뒷바라지를 해줬는데, 그게 늘 걸려. 영감이 5년 전에 세상을 먼저 떠나고 4년 전에 같이 살던 넷째딸까지 먼저 가니 이젠 나 혼자 살아.”

할머니는 그러면서 곧장 근처 밭으로 올라간다. “감자씨 만원어치 사서 심었는데 벌써 요래 싹이 나왔어.” “밭이 이렇게 큰데 저쪽에는 뭘 심으시려고요?” “깨도 심고, 우리 먹는 거 다 심지. 이것도 나는 나이가 많아서 더는 못해. 가까이 사는 우리 막내아들이 관리기로 엎어줘. 안 그러면 벌써 남 지어 먹으라고 했겠지. 막내가 이번주에도 올 거야.” “큰아드님은요?” “서울에 사니까 명절에나 오지 자주는 못 와. 우리 큰아들은 부산에 있는 대학을 나왔는데 그때만 해도 등록금이 비쌌어. 영감은 남의 집에서 일하면서 소 키우고, 나도 여기저기 일 다니면서 학교를 보냈지. 이 밭도 원래는 남의 밭을 우리가 농사짓다가 산 거야.” “많이 힘드셨겠어요.” “우리 좋으라고 그런 게 아니고 자식들 좋으라고….”

“자식이 아무리 많으면 뭘 하나요. 영감님마저 떠나시고 이제 할머니 혼자잖아요. 큰아드님은 서울에 있고, 막내아드님만 가까이 있을 뿐….” 그러자 할머니 왈. “저기 감나무도 거름을 많이 주면 키가 한정 없이 자라서 나중엔 감 따기도 성가셔. 사람도 그래. 너무 공부를 많이 시키면 높은 자리에 오르고 멀리 떨어져서 살아. 나무나 사람이나 다 똑같아. 멀어질 걸 알지만 그래도 자식 잘되길 바라고 공부시키고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거지. 부모 마음은 다 한가지야.”

날 때부터 부모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으련만, 어째서 자식만 낳으면 모두 똑같아지는지 신기한 노릇이다. 알면서도 자신의 몸 다하는 날까지 자식 걱정, 자식 뒷바라지를 하는 할머니를 보며 든 생각이다.

최정우 (영화감독)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