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화씨 451, 금지된 독서

입력 : 2021-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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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는 늘 책이 있었다. 교과서든 만화든 소설이든 실용서든 누구나 집에 책은 있다. 단지 책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책을 자주 읽는 사람과 잘 읽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겠다.

일 때문에라도 책을 읽어야 하는 나는 그것을 큰 복으로 생각한다. 진행하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 <문화 공감> 덕분에 매주 소설집·시집·사회과학서적을 두루 읽어야 한다. 한달에 한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화사서함에 녹음봉사를 하는 터라 소리 내서 책을 읽는 즐거움도 누린다. 그런데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영상과 종이책의 치열한 전쟁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미래 소설 <화씨 451>은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몬태그’의 직업은 방화수다. 책을 태우는 일을 한다. 불꽃 속에서 사라지는 책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화씨 451도는 책이 불타는 온도다. 소설 속 정부는 인간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언어를 제한하고 책을 읽는 것을 금지했고 심지어 책을 숨기다 발견되면 처벌하고 책과 집을 불태운다.

몬태그의 아내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집에서 영상에 빠져 산다. 삼면의 스크린 벽으로 둘러싸인 채 모든 정보와 즐거움은 24시간 계속되는 영상을 통해서 얻는다. 그녀는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드라마 속에서 만난 친척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매일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잠든다.

정부가 책을 금지하기 전에도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책을 읽지 않았다. 두꺼운 고전은 15분 만에 듣는 음성 축약본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2분짜리 압축본이 등장했다. 대화에 필요한 지식은 그것으로 충분했고, 생각은 점점 필요가 없어졌다.

10년 동안 아무 의문 없이 책을 불태우던 몬태그는 옆집 소녀 ‘클라리세’와 대화하다 그녀가 모든 일에 의문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무런 궁금증 없이 살아왔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아저씨는 행복하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행복하다고 답했지만 몬태그는 곧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부가 말하는 책의 유해성에 의문을 품은 몬태그는 책을 집으로 가져와 읽고 삶의 공허함을 깨닫는다. 이후 책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만난 몬태그에게 예상치 못한 인생이 펼쳐진다.

놀라운 점은 이 소설이 1953년에 나왔다는 사실이다. 마치 지금으로부터 70년 후의 미래를 보고 그때로 돌아가서 쓴 느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책 대신 영상을 선택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숱한 OTT(Over The Top·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는 우리를 영상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독서는 생각하게 하지만 영상물 시청은 생각의 비중을 현저하게 줄였다.

생각을 줄이면 생활은 점차 병들기 시작한다. 이현승 시인의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은 생활밀착형의 시 여러편을 통해 ‘생각과 생활의 균형 잡기’를 노래한다. 만약 당신의 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면 그건 당신의 생각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생각이 줄어든 이유는 아마 무언가의 노예가 됐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은 누굴까?

정말 책을 읽는 것이 금지된 사회가 온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상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행복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김재원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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